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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삼포 잉여’ 작가들의 톡톡 튀는 전시 바로 여기서!

등록 2015-07-05 19:45수정 2015-07-13 00:14

청년작가들 ‘자족공간’ 만들기 열풍
서울 돈화문길에 있는 문화아카이브 ‘봄’의 진입로 계단 공간에 있는 마네킹 작품
서울 돈화문길에 있는 문화아카이브 ‘봄’의 진입로 계단 공간에 있는 마네킹 작품

사막 같은 미술판에 야생화가 피었다

열정은 꿈틀거리지만 왠지 뜨뜻미지근하다. 앞날에 대한 전망이나 목표도 가늠하기 어렵다. 어쨌든 구르거나 굴러간다. ‘서식할 곳’부터 찾겠다는 절박하지만 모호한 욕구가 그들을 움직인다.

이런 특징들로 요약되는 20~30대 청년 작가·기획자들의 ‘나대로’ 전시공간들이 지금 미술판 변방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영등포 커먼센터, 상봉동의 교역소, 반지하 등 작가·기획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자생공간들에서 기획전, 토론회 등을 하면서 미술판의 잉여 세대 담론을 펼쳤던 게 물꼬가 됐다. 이 공간에 모인 청년작가들이 올초 연대모임을 꾸려 국립현대미술관 청년관 신설 등을 주장하며 전시 기회를 달라는 목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올봄부터는 서울 변두리에 무려 30곳에 육박하는 신생공간들이 삽시간에 생겨났다.

제도권 미술계나 대안공간의 공모전, 작업실 지원 등에 기대지 않고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잘 아는 미술인들끼리 협업하면서 ‘노는 게’ 특징이라고들 한다. 아티스트런스페이스 413, 문화아카이브봄, 지금여기, 기고자, 케이크갤러리, 구탁소, 우정국 등 유별난 이름에 성격도 한시 프로젝트, 기획전 중심, 퍼포먼스 중심 등 제각각이다. 부르는 명칭도 새로 생겼다는 뜻에서 그냥 신생공간이라 부르지만, 작품 놓고 스스로 즐기며 끼리끼리 대화하고 노는 ‘자족공간’에 더 가깝다. 특정한 인터넷 게임 공간에 몰린 게이머들에게 과부하를 덜어주려고 개별 공간을 할당해주는 개념 ‘인스턴스’를 끌어와 인스턴스 공간이란 말도 쓴다.

“작가들끼리 잘 몰라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전시장 만들자’ 제안해서 서로 생각이 맞으면 곧장 만들어요. 바로 장소 빌리고 조명등 놓고 같이 인테리어 꾸려 전시장 내는 거죠. 전시할 작품이나 공간의 지속성까지 고민하진 않아요. 언제든 뒤엎고 새로 차릴 수 있다는 생각들이 깔린 듯해요.”

서울 청량리의 변두리 주택가 지하에 자리잡은 ‘청량엑스포’의 전시장 모습.
서울 청량리의 변두리 주택가 지하에 자리잡은 ‘청량엑스포’의 전시장 모습.
청년공간 ‘청량엑스포’의 공동기획자 최조훈(29)씨의 말이다.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공간이 급증한 탓에 온라인상에는 ‘엮는자’라는 운영자가 20여개 신생공간의 온라인 주소와 전시 일정 등을 안내하는 사이트까지 나왔을 정도다. 작가 강정석씨는 4~5월 게임 공간의 열전지대를 의미하는 ‘던전’을 제목 삼아 여러 청년공간들을 게임 맥락에서 분석하는 순회전을 조직해 화제를 낳았다. 서울 변두리 청년공간들을 잇는 관람 동선을 미리 짜고 정기 순회하는 ‘신생산책’이 미대생이나 젊은 작가들의 새 풍속도로 등장하기도 했다.

1일 저녁 청량리 동부센트레빌 부근 언덕의 주택가 건물을 물어물어 찾았다. 이곳 지하에 청년기획자 3명이 운영하는 ‘청량엑스포’ 공간에서 성소수자들이 만든 작품과 제품을 전시하고 파는 첫 기획전 ‘퀴브젝트’(19일까지)가 펼쳐졌다. 저녁에 열린 오프닝 행사엔 성소수자 작가나 애호가 30~40명이 모여들어 바닥에 열지어 깔린 콘돔 등을 살펴봤다. 성소수자 모임이 만든 커피액도 병에 담겨 작품처럼 나왔다. 안쪽 구석엔 여성 성기 모양으로 빚은 ‘빵’을 파는 레즈비언 모임 회원이 관객과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옆벽에 꽂힌 작품 안내지를 뽑아 구매 의사를 적은 뒤 전시장 옆 창구에 넘겨주면 살 수 있게 돼 있다. 화랑은 물론 미술관, 대안공간과도 다른 파격적인 전시 유통 방식이다. 대표운영자 장수정(27)씨는 “전시문화가 척박한 청량리에서 복합적인 시각문화 활동을 펼쳐보고 싶어 전공이 다른 기획자들과 두어달 전 판을 열었다”며 “청량리 지명이 주는 가벼운 느낌도 좋았다”고 했다.

서울 합정역 근처에 있는 청년미술공간 ‘합정지구’의 전시 오픈 광경
서울 합정역 근처에 있는 청년미술공간 ‘합정지구’의 전시 오픈 광경
이와 달리 서울 북촌 윤보선길 안쪽 골목에 있는 ‘인스턴트 루프’는 틈새시장을 통한 작품 유통과 작가 전시 활동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춘 공간이다. 사무실로 쓰던 네평 남짓한 공간을 작년 6월 쪼개 전시장을 만들었고 그동안 전시만 6차례 치렀다. 기획자인 박기현씨는 “미술계 하부의 산발적 시장을 다른 청년공간들과의 연계로 활성화해 작가들 생존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서울 합정역 근처에 작가 이제씨가 2월 만든 ‘합정지구’는 또다르다. 30대 ‘나이든’ 작가들이 일상적으로 모여 이야기하고 교감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지향한다.

이처럼 제각기 양상이 다르긴 하지만, 청년공간 만들기 열풍은 기존 제도권 공간들에 대한 청년세대 미술인들의 ‘파산선고’와 맥락이 닿아 있다. 90년대 이래 청년작가들의 세대 기반으로 구실해온 대안공간과 레지던시(작업실 지원), 공모전 등의 제도들이 미술시장의 입김 아래 휘둘리면서 재력과 인맥 없는 삼포세대 작가들에게 더이상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는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커먼센터에서 ‘청춘과 잉여’전을 만들었던 기획자 안대웅씨는 “기존 미술판의 시스템 아래서 작업의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하니 독자적인 생산과 유통의 모델을 꾸려야 한다는 요구가 자연스레 생겨났고, 그것이 지금 신생공간이라는 ‘알 수 없는 활기’로 이어진 셈”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커먼센터는 5월 ‘1인 가구’를 화두로 한 미술 디자인 기획전 ‘혼자 사는 법’과 더불어 독신자용 작품과 일상품들을 파는 ‘리빙아트페어’를 열어 호평받았다. 커먼센터를 비롯한 일부 청년공간 기획자들은 ‘굿즈’란 이름 아래 청년작가 미술품을 판매하는 대규모장터(아트페어)를 10월에 여는 계획도 추진중이다. 작품 수준은 논외로 접고 자족적인 공간 차리기에 우선 치중해온 청년공간들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미술계가 주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한국 미술의 차세대이며 어쨌든 지금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으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활기’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 무엇을 낳을 것인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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