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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맑은 꽃세계, 부처의 땅

등록 2015-07-07 21:27

이수예 작가의 설치작품 ‘인연’의 일부분인 ‘만남’. 서방극락정토에서 중생을 데려오기 위해 산을 넘어 강림하는 아미타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수예 작가의 설치작품 ‘인연’의 일부분인 ‘만남’. 서방극락정토에서 중생을 데려오기 위해 산을 넘어 강림하는 아미타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불화가 이수예씨 일본서 초대전
꽃송이·불화 어우러진 설치작품
에히메현미술관서 730여점 전시
“범어사 대웅전 우물천장서 영감
꽃을 통해 깨달음의 길 그렸다”
오방색 꽃송이들은 곧 사람들이자 만물의 생명이었다. 이들이 얽혀 아름다운 인연의 그물을 이룬 무상의 세계, 부처의 지혜와 자비가 만물에 깃들어 꽃처럼 활짝 피어난 불국토의 세계가 거대한 전시장에서 꽃송이들의 물결 속에 펼쳐지고 있다. 부처의 가없는 지혜, 세속의 번뇌를 벗어나 깨달음을 향해 묵묵히 정진하는 불자들의 기원과 의지가 연꽃, 모란꽃, 작약꽃, 보상화 등의 꽃송이와 둥근 태양, 달과 별의 모습으로 열을 지어 나타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작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일본 시코쿠 섬 에히메현의 도시 마쓰야마에서 중견 불화가 이수예(43·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장)씨가 석가모니 부처의 정토를 형상화한 설치작품 초대전 ‘인연’을 열고 있다. 마쓰야마 성 아래 자리한 에히메현미술관 특별전시실에서 1일 개막해 1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100평 넘는 공간에 730여 개나 되는 각양각색의 꽃송이들과 단청문양들이 갖가지 형태를 빚어내며 부처, 보살을 묘사한 불화와 함께 어우러진 소우주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미술관이 모네나 보나르 등 서구와 일본의 근대기 대가들 작품들을 다수 소장한 일본 굴지의 유명컬렉션이란 점에서 더욱 눈길이 쏠린다.

이수예 작가가 에히메현미술관에서 자신의 대형 설치작품 ‘인연’의 마지막 부분인 ‘해인삼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수예 작가가 에히메현미술관에서 자신의 대형 설치작품 ‘인연’의 마지막 부분인 ‘해인삼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6일 오전 불교계 인사들과 함께 현지 전시장을 찾아가 실견한 이씨의 대작은 자기 안의 불성을 깨닫는 길을 검은 소가 흰 소가 바뀌는 열 단계 과정으로 묘사한 불화 ‘십우도’의 구성과 비슷해 보였다. 부처의 설법과 원음을 들으며 지혜와 자비의 공덕을 접한 중생이 정도를 얻기 위해 실천을 거듭하며, 마침내 달이 온바다를 비추는 해인(海印)의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마름모꼴과 물결, 산 같은 형태로 탈바꿈해가는 꽃송이 무리의 도상적 변신으로 재해석해 풀어냈다. 전통 불화 보존 복원작업과 더불어 7차례 개인전을 열어 현대설치미술과 불화의 낯선 만남을 거듭 시도해온 작가는 “절집들을 수놓는 꽃 장식들을 보면서 받은 영감에서 작품이 풀려나왔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범어사 대웅전을 소재로 불화 개인전을 하면서 절을 살펴봤는데, 대웅전 우물천장 위의 어여쁜 꽃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어요. 단순히 부처와 사찰을 수놓는 장엄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람과 만물에 깃든 불성이자, 정진을 막아서는 번뇌를 표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쳤어요. 부처의 정토를 두고 연꽃 모양의 연화장 세계라고 하는데, 꽃들로 정토의 형상과 깨달음의 길을 실감나게 펼쳐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요. 현대 설치기법으로 전통 불화, 단청의 세계를 나름대로 마음껏 풀어냈고 불교미술에 관심 많은 일본 관객들과도 교감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대작 ‘인연’은 크게 세 공간 속에 ‘화엄회상’과 ‘염불‘ ‘원음’ ‘염원’, ‘내영(來迎)’, ‘해인삼매’((海印三昧)’ 등 10개의 부분작들로 짜여 흘러간다. 높이 4m가 넘는 휑한 공간인데도, 내걸린 설치작품 곳곳마다 작가의 내공이 뒷받침된 전통 불화 요소들이 함께 들어가 밀도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부처의 영축산 설법을 담은 들머리의 ‘화엄회상’과’, 아미타부처가 중생을 구원하러 산 넘어 오는 ‘ 내영-만남’ 등에서 정교한 필선으로 그린 부처, 보살들의 채색화나 밑그림이 들어가 사찰의 진중한 분위기 또한 살려낸 것이 그렇다. 삼각형 꽃송이로 표상된 우리 마음의 불성 위에 마음을 미혹하고 가리는 요소인 ‘무명(無明)’을 황금빛 구슬을 늘어뜨려 표현하고, 거북 등이나 곡선형상의 단청이미지 ‘금문’을 색다른 이미지 요소로 활용한 데서 작가의 현대적 감각과 재치가 엿보인다. 미술관의 스기야마 하루카 학예원(36)은 “단순화한 꽃문양의 아름다운 색채감이 인상적”이라며 “일본의 불교미술과는 다르면서도 묘한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지금 부처의 세상이 다시 생겨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이 맑은 꽃 세계 속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날 함께 전시를 둘러본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은 찬탄을 쏟으며 ‘화엄회상’ 석가모니불 그림 앞에서 절하며 예불을 했다. 관객들의 죄업을 소멸하고, 그들 가는 곳마다 좋은 인연 맺게 해달라는 스님의 발원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마쓰야마/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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