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햇빛샤워’의 모습.
장우재 연출 연극 ‘햇빛샤워’
언제 싱크홀에 빠질지 모르는 남녀
햇볕 갈망하며 음지 속에서 살다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
언제 싱크홀에 빠질지 모르는 남녀
햇볕 갈망하며 음지 속에서 살다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
광자는 왜 ‘쌍년’으로 불렸을까? “나는 아무 남자하고도 잘 잔다. 아니 잘 때운다. 돈 없어서 때우고, 빽 없어서 때운다. 씨발.” ‘빛 광 자’ 광자는 ‘미칠 광 자’ 광자로 불렸다. “좀 더 빛을, 빛을!” 서른 해 좀 못 되는 일생 동안 햇빛을 그토록 갈구했지만, 광자의 일생은 늘 습하고 외진 음지였다. 반지하 월세방은 그의 숙명이었다. 햇빛세상에 살고 팠던 젊은이의 음지, 바로 9일 막오른 장우재 작·연출의 연극 <햇빛샤워>다.
불이 켜지면 무대엔 ‘추락 주의, 씽크홀’이라는 경고판이 보인다. 싱크홀은 지반이 푹 꺼진 위험지역. 그 주위를 사람들이 불안하게 지나친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언제 싱크홀을 만나 무저갱,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두 남녀의 삶도 싱크홀이다. 백화점 매장 직원 광자, 그리고 광자가 세들어 사는 주인집 양아들 동교다.
고아인 광자는 아프다. 비타민 디(D) 부족으로 골연화증을 앓고 있다. 의사는 햇볕을 더 많이 쬐라고 처방했다. 광자는 반칙왕이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동료의 고객을 가로채고, 매장 매니저가 되려 과장을 구워삶는 데 육탄공세도 마다 않는다. 광자는 이름을 ‘아영’으로 바꿔 새 인생을 살고 싶다.
광자와 마찬가지로 고아인 동교는 순수하다. 셈도 느리고 어쩌면 좀 모자란다. 양부모의 연탄 배달을 돕고 월 10만원과 덤으로 연탄 200장을 받는다. 그렇게 받은 연탄을 홀몸 노인들을 위해 쓴다. 동교의 선행이 알려지자 구청에선 연탄나눔 사업을 추진하며, 동교를 위원으로 추대하려고 한다. 양부모는 동교 대신 그 자리를 탐한다. 동네 노인은 연탄을 더 나눠달라며 담배를 동교에게 건넨다. 갑자기 변한 주변 사람 때문에 동교는 방황한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자살을 택한다.
광자는 두 번 칼을 든다. 십대 시절 자신의 이름을 빗대 미친년이라고 놀린 친구를 면도칼로 그었다. 그리고 이십대 후반에 동교를 죽음으로 내몬 동교의 양어머니에게 식칼을 들이밀었다. 왜?
자칫 가난한 청춘들의 담담한 이야기로 끝날 뻔한 이야기는 ‘식칼’ 이후 급격한 반전을 일으킨다. 뻔한 결말 대신 두 남녀의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새로운 긴장을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그 동기나 개연성은 불명확하다. 동교는 왜 자살했지? 광자는 왜 찔렀지? 관객은 어리둥절하다.
다만 힌트는 있다. 광자는 의사의 권고대로 햇빛으로 샤워를 했다. 어둠의 몸을 빛으로 씻었다. 마찬가지로 동교의 죽음이라는 어둠을 보자, 어둠을 씻어내는 ‘빛의 도구’로 칼을 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작가는 머릿속에 또 하나의 ‘싱크홀’을 그렸을 법하다. 바로 가난한 남녀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갑자기 땅이 꺼지듯’ 싱크홀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아닐까?
동교의 양어머니를 찔렀던 식칼은 다시 광자의 목으로 향했다. 광자가 쓰러진 침대가 싱크홀처럼 갑자기 푹 꺼졌다.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싱크홀을 피해 사람들이 무심히 오갔다. 햇빛세상에 살고팠던 젊은이의 죽음 위로 무대조명이 밝게 비쳤다. 110분 공연으로 17살 이상 관람 가능하며,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이와삼이 공동제작했다. 26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02)758-2150.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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