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DJ는 최고 인기인
떡볶이집서 라디오방송까지
그들은 선곡의 절대권력자였다 하지만 토크가 뜨며 음악은 뒷전
이젠 아이돌·개그맨·가수 등이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다
유행·신변잡기를 재밌게 섞어 ■ ‘디제이 목장’의 결투 오후 2시, 문화방송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가 독특한 웃음소리로 결투 시작을 알리면, 한국방송에선 김광한이 <팝스 다이얼>로 ‘대응 사격’에 나섰다. 저녁 8시엔 <박원웅과 함께>(문화방송)와 <황인용의 영팝스>가 다시 한판 붙었다. 라디오 프라임타임인 저녁 8시는 신비로운 시그널 음악과 함께 등장한 박원웅과 기타줄 소리에 맞춰 인사를 건네는 황인용이 가장 치열한 디제이 혈투를 벌이던 시간대다. 밤 10시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는 것이 1980~1990년대 라디오 키드들이 하루를 마감하는 의례였다. 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최규성씨는 “디제이 전성시대는 원래는 가수들로부터 시작됐는데 1970년대 양희은·이장희·박인희 등 가수들이 인기 디제이를 겸했다. 그 인기 덕분에 다운타운 디제이와 방송 전문 디제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최씨가 소장하고 있는 당시 잡지들을 보면 전문 디제이가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잡지 <월간팝송>엔 이달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순위가 있는데 1979년 8월호엔 박원웅, 김제건, 도병찬 등의 디제이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이 1, 2, 3위로 양희은, 박인희 프로그램의 인기를 넘어서고 있다. 애독자 엽서에 좋아하는 연예인과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적어 보내던 시절이다. 이 잡지는 그 다음해부터 디제이 인기순위만 따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디제이 김기덕은 “당시엔 가수들이 신곡 발표 무대로 티브이보단 라디오쇼를 더 선호했다. 라디오 청취율이 티브이보다 훨씬 더 높았고 라디오에 출연하면 음악적으로 인정받는다고 믿었다”고 전한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외국 최신 음악을 전하는 가장 신선한 매체였던 시절, 디제이는 최고 인기인이었다. ■ 뜨는 토크, 지는 음악 1985년부터 1996년까지 문화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던 가수 이문세는 음악적 지식과 부드러운 진행솜씨가 대세였던 라디오 방송에 ‘오빠 디제이’ 시대를 열었다. 고등학생들의 아침 인사가 “너 어제 별밤 들었어?”였을 만큼 ‘별밤’은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를 능가했다. “다음주에 또 나올 수 있겠죠”라는 유행어로 이경규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 곳도, 이문세·유열·이수만이 ‘마삼 트리오’로 뜨기 시작한 것도 이 프로그램이었다. 진행자로 방송을 시작했던 이문세는 같은 시간대에 방송하는 이종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한 것이 계기가 돼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선 이문세·이경규가, <밤의 디스크쇼>에선 이종환·이택림이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라디오 토크’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토크가 뜨면서 음악은 빠르게 힘을 잃었다. 마침 팝 음악의 비중도 줄어들고 있던 참이었다. 디제이 김기덕은 디제이 시대의 내리막길을 “서태지의 등장부터”로 꼽는다. 청취자들이 팝 음악에서 우리 음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해설자로서 디제이의 역할이 줄었기 때문이다. 최규성씨는 “문화적 중개자 없이 서구 문화를 직수입하기 시작한 88올림픽 때부터 음악 디제이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1992년 9월 <하이틴>이라는 잡지를 보면 인기인 순위에 디제이가 빠지고 엠시(MC)가 오르기 시작한다. 전영혁, 신해철, 유희열, 성시경 등 몇몇 음악인들이 음악 전문방송 디제이를 맡아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디제이 시대 화양연화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개그맨, 인기 연예인 등이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엠시 시대다. ■ 지금은 ‘엠시 디제이’ 시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는 여전히 디제이석에 ‘콘솔’이라고 부르는 음악을 트는 장치가 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정찬형 국장은 “대부분 배철수씨가 방송 전에 필요한 노래를 골라놓고 방송하면서 흐름을 만든다. 요즘 많은 디제이들은 선곡표를 받아 방송을 하지만 배철수씨는 거꾸로 빈 종이에 방송한 노래를 적어두는 식으로 원래 디제이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했다. 지금은 <음악캠프>처럼 디제이가 음악을 고르고 음악을 줄였다 키우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보태는 프로그램들이 많지 않다. 디제이들은 이야기에 주력하고 음악은 피디가 튼다. 아예 콘솔을 빼버린 녹음실도 있다. 한국방송 정일서 피디는 “개편 회의를 할 때마다 피디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여전히 뮤지션들이나 음악을 아는 사람이 디제이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음악이 중요한 시대는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에이엠은 이야기, 에프엠은 음악 중심이라는 구분은 없어졌다. ‘전설의 디제이’들은 음악 전달자였다면 선곡보다는 진행자의 개성과 재미가 우선인 시대엔 아이돌, 개그맨, 가수 등 다종다기한 디제이들이 음악 대신 캐릭터를, 유행을, 신변잡기를 섞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최규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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