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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거장 이쾌대’ 창작 동선을 좇다

등록 2015-07-21 18:49수정 2015-07-21 20:59

해방 뒤 서울 돈암동에서 성북회화연구소(1946~1950)를 운영할 당시 이쾌대의 작업 모습.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이다.
해방 뒤 서울 돈암동에서 성북회화연구소(1946~1950)를 운영할 당시 이쾌대의 작업 모습.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쾌대 50주기’전
월북한 ‘비운의 리얼리즘’ 대가
‘군상’ 등 전성기 작품뿐만 아니라
초기·모색기 인물화 비중있게 다뤄
편지·유품도 전시…당시 화단 생생
“성실과 끈기를 배웠지. 정말 존경했거든. 물방울 그리면서 선생님 영향을 내가 많이 받았구나 생각해. 우리 누가 움직이지 않고 하루종일 그림 그리나 내기하자 그러셨다고. 선생님이…”

물방울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원로작가 김창열(86)씨가 아련하게 떠올린 청년시절 스승의 이름은 월북작가 이쾌대(1913~1965)다. 그는 한국 근대리얼리즘(사실주의)미술의 우뚝한 봉우리였다. 1946~50년 성북회화연구소를 개설해 김창열, 전뢰진 등의 대가들을 키운 교육자이기도 했다. 새 국가 건설의 희망과 좌우 이념대립의 불안이 공존했던 해방공간을 뒤엉킨 알몸 남녀들로 형상화한 대작 ‘군상’에서 보이듯, 시대와 현실에 대한 자의식을 뛰어난 구성력으로 화폭에 넘치게 부려낼 수 있었던 당대 유일한 작가가 바로 이쾌대였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남았다가 김일성 초상을 그리는 부역행위를 해야했고, 그런 이유로 국군의 포로가 된 뒤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가족을 남긴 채 북녘행을 택했던 것이 오랫동안 잊혀진 작가로 그를 묻은 굴레가 됐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못지않게 시대와 뒤엉켰던 그의 작품과 삶이 이제라도 온전히 주목받아야할 이유다.

30년대 일본 유학시절 작품인 ‘카드놀이하는 부부’. 부인 유갑봉과 여유롭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꾸려나갔던 추억이 비치는 그림이다.
30년대 일본 유학시절 작품인 ‘카드놀이하는 부부’. 부인 유갑봉과 여유롭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꾸려나갔던 추억이 비치는 그림이다.
22일부터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시작하는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전은 그의 사거 50주기에 바치는 기념비격이다. 당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던 필력과 시대의식으로 한국 근대미술을 한발짝 내딛게 했던 거장의 화풍과 삶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초유의 회고전이다. 88년 해금 뒤 91년 ‘군상’연작과 ‘자화상’ ‘운명’ 등 걸작들이 처음 개인전으로 소개됐고, 이후에도 간간이 드로잉 전시 등이 열렸지만, 이번 회고전은 규모와 차원이 다르다. 휘문고보 시절 그린 첫 작품 수채화 ‘정물’(1929)과 다양한 인물화, 해방공간의 대작 등 40여점의 작품들에 더해 100점 넘는 미공개 드로잉과 각종 편지, 엽서, 발표 글과 화집, 유품 등이 유족, 지인들의 협조로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리얼리즘 거장의 삶과 작품세계를 두루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시장은 일본 제국미술학교 재학시절의 학습기(1929~1937)와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전통화와 양화의 접합을 꾀한 모색기(1938~1944), 해방공간에서 시대와 어우러진 한국적 리얼리즘 화풍을 정립한 전성기(1945~1953)로 나뉘어졌다. 기획자의 의도가 돋보이는 건 초창기와 모색기의 인물화 쪽이다. 이쾌대는 사랑했던 부인 유갑봉을 주된 모델로 학창시절부터 여인상을 즐겨 그렸다. 드로잉과 병행해 숱한 인물화들을 창작하면서 감정과 분위기가 녹아있는 특유의 화풍을 구축하게 된다. 전시는 이런 과정에 방점을 찍고 그의 리얼리즘 태반이 인물화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실적 묘사에서 강인하고 냉정한 현실인식을 내비치는 쪽으로 인물의 면모가 바뀌어가는 과정을 처음 공개되는 <신여성>잡지(1936)의 표지화와 ‘무희의 휴식’, ‘운명’, ‘상황’ 등의 여성인물화 등을 통해 읽을 수 있다.

 부인 유갑봉의 초상으로 추정되는 <신가정> 1936년 8월호의 표지삽화.
부인 유갑봉의 초상으로 추정되는 <신가정> 1936년 8월호의 표지삽화.
또, 41년 이중섭, 진환 등과 결성한 조선신미술가협회의 전시 안내장과 방명록,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은 작가의 숨결과 당시 화단 동향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진귀한 사료들이다. 전시 끝부분에 유품과 함께 놓인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파, 일본근대화, 우리 전통화 등을 망라한 화집들은 그의 화풍이 동서양 미술사에 대한 탐구와 종합의 산물임을 일러준다. 루벤스, 들라크루와 화풍의 역동적 구도와 색감의 영향이 보이는 ‘군상’ 연작과 르네상스 거장 브론치노의 우의적 그림을 연상시키는 ‘상황’의 기묘한 인물상 구도가 모두 일관된 뿌리가 있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게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새기고 쓴 여인조각상과 인체해부학해설서도 처음 선보이는 화제작들이다. 기획진으로 참여한 김인혜 학예사는 “이쾌대 작품들은 해방공간의 사회성 강한 대작들만 주목해왔지만, 자료 아카이브가 집약된 이 전시를 통해 전시기 작품들에 얽힌 창작 배경의 퍼즐들을 짜맞출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결실은 빛나지만, 전시 자체는 미완성이다. 월북 이후 타계 때까지 북한에서의 활동은 작품, 자료의 미비로 포함되지 못했다. 처음 공개된 성북회화연구소 시절 이쾌대의 눈빛 형형한 작업사진을 통해 말년에도 그가 열정을 품고 붓질을 거듭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11월1일까지. (02)2022-06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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