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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자본주의호, 지옥으로 ‘순항중’

등록 2015-07-23 19:35

연극 '게공선'의 한 장면. 사진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연극 '게공선'의 한 장면. 사진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리뷰 l 연극 ‘게공선’

‘메이드 인 공장’ 연극이 막을 올렸다. 22일, 40m 굴뚝이 치솟은 서울 양평동의 공장. 굴뚝에선 쌍용차 해고자와 칠곡의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굴뚝은 지옥의 시간을 사는 한국 노동자의 상징이다. “철컥철컥!” 1층에선 아직 금형기계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 2층의 무대는 공장의 기억을 거친 블록 벽과 콘크리트 바닥에 남겼다. 나무 계단 객석의 맞은 편, 그러니까 무대 쪽의 창 밖은 칠흑 같은 공단의 밤이다.

배 위 노예노동·폭력 그린
80년전 실화 바탕 일 소설 원작
지금 대한민국 상황과 겹쳐 보여

한편으로는 ‘메이드 인 자본주의’ 연극이다. 원작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 <게공선>. 게를 잡아 통조림을 만드는 배다. ‘공장선’으로 ‘선박’이 아니었다. 항해법도 공장법도 적용받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엔 노예노동과 폭력이 난무했다. 1926년, 일본의 게공선에서 한 선원이 사망했다. 1929년,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이 나왔다. 2009년, 출간 80년 된 이 소설이 일본에서만 50만 권 이상 팔렸다. 왜? 독자는 ‘자본주의의 지옥’을 봤다. 청년실업과 시급노동으로 대표되는 20대들의 공감이 컸다. 수 만 명이 일본공산당에 들어가거나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했다.

무대엔 배가 없다. 하지만 배다. 가로세로 5m의 검은 네모를 배라고 친다. 유일한 무대 장치다. 그 빈 공간은 배우의 몸과 땀으로 채운다. 배우 10명이 배에 탔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도 ‘한 배’를 탔다. 출항이다.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원작소설의 첫 문장이다.

각색·연출을 맡은 강량원은 관객에게 ‘어이, 자본주의의 지옥을 몸으로 느껴봐!’라고 말하는 듯하다. 오로지 배우의 몸으로 그 지옥을 보여준다.

“영차영차!” 선원(노동자)이 밧줄을 당긴다. 실제 밧줄은 없다. 밧줄을 잡은 듯 동그랗게 만 손을 보니, 꽤 굵은 모양이다. 꽤 무거운 모양이다. 핏줄이 곤두서고 근육이 꿈틀댔다. 코끝의 땀방울이 턱을 거쳐 뚝! 뚝! 출혈처럼 바닥에 내리꽂혔다. 선원들은 여섯 달 동안 하루 21시간씩 일했다. 그물을 준비하고, 내리고, 올리고, 게를 떼고, 찌고, 일렬로 서서 다리를 자르고, 살을 뽑아내고, 통조림통 안에 넣고, 뚜껑을 닫고, 상자에 담고, 운반선으로 실어날랐다. 채찍과 주먹도 날아왔다.

선원의 몸에서 에너지가 소진된다. 몸의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의식의 배터리는 ‘충전’된다. “우리가 누구야 미조직 노동자, 게공선이 우릴 가르친 거야!” “살해당하고 싶지 않은 자는 오라!”

왜 2015년 한국에서, 1929년 일본을 호명했을까? 연극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라는 지옥을 항해하는 배’,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노동자, 청년들의 암울한 상황을 ‘지금 여기’에서 본다.

<게공선>은 정부지원 없이 시민 모금으로 진행하는 제17회 서울변방연극제 폐막작이다. ‘극단 동’이 제작하고 최용진·최태용·권택기·김석주·김진복·윤민웅·이재호·김광표·임주현·김용희가 출연한다. 8월2일까지 서울 양평동 인디아트홀 공. (02)3673-5575.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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