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동시대 세계에 비전 제시하는 게 컨템포러리 예술”

등록 2015-07-27 21:48

세계 공연예술의 대모로 불리는 프리 라이젠 ‘벨기에 쿤스텐 아트페스티벌’ 창립감독은 23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만나 “동시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컨템퍼러리 예술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세계 공연예술의 대모로 불리는 프리 라이젠 ‘벨기에 쿤스텐 아트페스티벌’ 창립감독은 23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만나 “동시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컨템퍼러리 예술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공연예술 대모’ 프리 라이젠 인터뷰
“하루에 담배를 얼마나 피세요?”

“세보지 않아 모르겠네요, 하하하.”

‘세계공연예술의 대모’ 프리 라이젠(65) 벨기에 쿤스텐 아트페스티벌 창립감독은 애연가로 유명하다. 그 앞에 한국담배 ‘디스 플러스’가 놓여있다. 프리 라이젠은 담뱃갑에 그려진 고래 그림과 글귀를 가리켰다. “바다는 겁장이를 미워한다.(The sea hates a coward)” 그는 유럽의 문화와 학문에 크게 기여한 이에게 주는 에라스무스상 2014년 수상자다. 지난해 수상 연설에서 ‘고래’라는 화두를 던졌다. 고래는 정치·사회·미학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을 뜻한다. “고래는 운석이 지구와 충돌할 것을 알고,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바다에서 살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 겁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이 꼭 퇴화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예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4년 임기의 빈 페스티벌 예술감독직을 9개월 만에 던지고 ‘바다’로 돌아갔다. 지난 23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프리 라이젠을 만났다. 그는 오는 9월 문을 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의 ‘아워 마스터’ 프로그램을 통해 20세기 공연예술의 변혁적 작품들을 재조명한다.

9월 개관 아시아예술극장에서
20세기 변혁적 작품 재조명 나서
세계 공연예술 혁신에 큰 기여
지난해 ‘에라스무스상’ 받아
“다른 나라와 공동제작 등 통해
아시아에서 중요극장이 될 것”

■ “연대 없이 돈으로 묶인 유럽에 분노” 유럽의 지식인 프리 라이젠이 ‘유로존 탈퇴’를 무기로 그리스를 위협한 독일을 어찌 보는지 궁금했다. 그보다 1년 앞서 에라스무스상을 받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최근 “독일 정부가 반세기 동안 쌓은 신뢰를 하룻밤에 탕진한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우 분노하고 부끄럽습니다. 유럽이라는 정체성이 오직 돈으로만 묶인 것 같고, 진정한 연대(solidarity)는 없이 기술관료, 회계장부 관리자만 남은 것 같습니다. 사회·문화적 측면을 넘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하나의) 유럽이 존재하지 않는 듯해요.” 동시대 유럽에 대한 날선 지적이다.

동시대 예술 혹은 ‘컨템퍼러리 아트’에 대한 생각은 뭘까? “오늘날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언어로 오늘날의 관객을 위해 현재 만드는 예술입니다. 우리 동시대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컨템포러리 예술입니다.” 동시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컨템퍼러리 예술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 “비판할 수 있는 용기가 정말 중요” 좀더 근본적으로 공연예술에 대한 생각은 어떤 걸까? “공연예술은 공연이 시작하는 순간 발생해 공연이 끝나는 순간 사라져 사람들의 머리나 가슴 속에만 남습니다. 소유할 수 없는 덧없음(ephemerality) 때문에 공연예술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연극과 같은 공연예술은 ‘돈을 벌 수 없는 예술’이다. “돈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예술은 사회와 인간 행동방식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사회의 아픈 곳이나 제기능을 못하는 부분을 콕콕 찍어 지적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기금을 주는 정치가,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 힘을 가진 언론, 동료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또 지금 후원자나 미래의 후원자를 만족시키려다 보면 살롱예술처럼 재미없는 예술이 되고 맙니다. 강하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나약하고 잘 안되는 것을 보여주는 예술이지요.” 그는 “인간의 나약함(fragility)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게 예술가의 임무”라고 했다.

■ “아시아예술극장, 제작극장 기대” 공연예술은 노동계급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제 목표가 노동계급을 컨템포러리 아트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런 게 실현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컨템포러리 아트를 엘리트주의라고 보는데, 과제는 그 엘리트를 최대한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큰 엘리트 집단은 점점 사회 다른 영역으로 확산됩니다. 새로운 예술은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 라이젠은 아시아 등 비서구권 예술을 주목한다. “유럽은 예술적 가치의 평가를 독점했지만 이제 달라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란과 칠레의 시골 출신 연출가는 제게 서구연극과 전혀 다른 강렬한 작품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새로 출범하는 아시아예술극장에 대한 기대도 남다르다. “다른 나라와 공동제작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해, 해외작품 초청·제작·레지던시·성찰의 과정을 거치면, 아시아에서 중요극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3~5년의 시간과 리스크 감수가 필요하다고 봤다. 프리 라이젠은 25일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김성희 아시아예술극장 예술감독과 ‘컨템포러리 토크’를 나눴다. 500~600명이 경청했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그는 28일 아시아예술극장 기자간담회에 참석한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프리 라이젠은 누구?

1950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세계 공연예술의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 다음 세대 예술가들과 새로운 공연형식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비서구 예술을 유럽무대에 세웠다. 1980-91년 벨기에 안트베르펜 데 싱겔 극장을 창립해 예술감독을 맡는 것을 시작으로, 1994년부터 브뤼셀 쿤스텐 아트페스티벌을 통해 동시대 공연예술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이후 중동의 다원예술축제 미팅 포인츠, 베를린 페스티벌, 비엔나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2014년엔 유럽의 문화, 사회,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에라스무스상을 수상했다. 수상 연설에서 예술에 대한 지원 부족을 들어, 네덜란드 국왕을 비판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