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화가 이종구씨의 ‘대지-모내기’ 연작이 정면에 붙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장. 천장 가까운 높이까지 그림들을 내건 전시형식의 파격이 돋보인다.
양대 공공미술관, 남북 삶·역사 미술품으로 재구성
2015년 여름은 한국 미술판의 전시역사에서 특별한 기점으로 남을 만하다. 분단 이래 처음 미술의 오롯한 상상력으로, 남과 북의 삶과 역사를 조망한 대형 전시가 나란히 차려졌다. 국내 양대 공공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남과 북의 현실을 미술품으로 재구성하는 기획을 잇따라 선보이는 중이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8일 시작한 광복 70돌전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은 역대 미술품에 투영된 대한민국의 복잡한 삶과 역사들을 다룬다. 앞서 21일부터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분단 70년 주제전 ‘북한 프로젝트’는 남북한·외국작가들이 현대미술로 뜯어본 북한의 이미지 연대기다.
둘 다 기년에 급급한 의례적 기획이 아니다. 형식·내용 등에서 특기할 만한 지점들을 짚었다. 외국 컬렉션에서 빌려온 북한체제의 선전포스터와 유화, 국내외 작가의 북한 작업 등을 처음 한자리에 대거 소개했으며(서울시립미술관),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민족기록화와 공공미술 등을 비롯한 한국미술사의 낯선 작품들로 남한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재구성(국립현대미술관)했다.
‘소란스러운…’전은 출품작 75%가 50년대~2000년대 소장품이다. 전시 방식이 이채롭다. 설치작가 최정화씨가 디지인한 1층과 지하층 전시장은 서예, 유화, 한국화부터 조각, 비디오아트, 설치작업, 퍼포먼스 등 온갖 작품들로 바닥부터 천장 끝까지 가득 채워졌다.
처음 들머리는 열발의 총성에 젊은이들이 다양한 포즈로 쓰러지는 모습을 담은 안정주의 대형 동영상 ‘10번의 총성’이 맞는다. 입장하면,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김성환 화백이 종군기자 시절 그린 전쟁기록화가 나타나고 곧장 세개의 각 시대 영역을 반영하는 작품 행렬과 만나게 된다. 전시는 뚜렷한 의미보다는 분단 뒤 한국인의 불안정하고 복잡한 심사를 털어놓으려 애쓰는 쪽이다.
1부 ‘소란스러운’의 철조망 가벽에는 한국전쟁 직후 음울한 사회상이나 내면을 묘사한 김창열, 박서보, 김환기 등의 그림이 바닷가를 부유하는 전란의 유령들을 찍은 조습의 근작 ‘파도’ 등과 함께 얽혀 있다. 칙칙한 합판벽에서 백색 전시장으로 치닫는 2부 ‘뜨거운’은 60~80년대 산업화, 민주화, 고속성장이 뒤엉킨 시대를 따라 추상과 사실주의가 얽혀 들어가는 미술 요지경이다.
특히 단색조회화의 대가 정창섭이 70년대 그린 민족기록화 ‘경제성장’은 새마을 깃발 아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산업역군들을 담은 것으로 북한 사회주의 선전화를 보는 듯한 착시감을 낳는다. 80년대 참여미술가들의 숨은 대표작들도 두루 볼 수 있다. 디지털, 다문화 등 90년대 이후 사회상을 담은 3부 ‘넘치는’은 화려한 색색 공간에 개념미술가 박이소의 헐렁한 조명설치작업과 백남준의 미공개작 ‘이태백’, 최정화, 홍경택, 니키리, 노재운 등의 발칙한 영상 및 설치작업들이 들어섰다. 역대 가장 양질의 소장품전이란 평가가 나오지만 4달여 만에 꾸린 급조 전시라 자료 정리 작업이 미흡하고 도록도 만들지 못한 점 등이 눈에 걸린다.
‘북한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컬렉션에서 대여해온 북한의 선전포스터과 유화작품들이 고갱이다. 건강한 노동군상들을 그려넣은 유화와 포스터들을 전시장 좌우 중심에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 구석에 북한 곳곳을 찍은 유럽, 중국 현대 사진가들의 사진과 한국 작가들이 북한을 소재로 만든 설치작업 등을 끼워넣었다. 북한의 시각문화, 북한 사람들의 삶을 미학적으로 들여다보려는 구도다.
특히 50년대 천리마 운동 시절부터 2000년대 문화행사까지 북한 사회의 시각적 변화 양상을 증언하는 포스터들이 단연 압권이다. 별다른 미학적 해석 없이 다닥다닥 전시벽에 붙여 넣어 안일하게 전시를 갈무리한 것이 흠이다. 이 전시의 또다른 재미는 소장작가 전소정, 권하윤씨의 영상, 가상현실 작업들을 보는 데 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3D 투시경 영상으로 재현해 작가의 체험을 관객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권하윤씨나 탈북자와 남한 피아니스트의 격렬한 협주를 통해 분단을 서정적 감성으로 풀어낸 전소정씨의 작업은 청년세대 분단미술의 새로운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서울시립미술관에 선보인 50~60년대 북한 선전 포스터들. 현란한 색채와 강한 선으로 노동군상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제작시기, 도안자 이름 등이 기록돼 북한의 시각문화 양상이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려준다. 네덜란드 빔 반데어 비즐 컬렉션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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