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작업 끝 새 금물 입혀
극락왕생 실체 담은 바라춤
범패 울리며 스님·불자 함께해
복장물에 임진왜란 당시 발원문
당시 백성들의 참상 등 담겨
‘풍류남도만화방창’ 전시도
극락왕생 실체 담은 바라춤
범패 울리며 스님·불자 함께해
복장물에 임진왜란 당시 발원문
당시 백성들의 참상 등 담겨
‘풍류남도만화방창’ 전시도
400여년 만이다. 대웅전 부처님들이 새 금박옷을 갈아입었다.
개금불사(改金佛事), 고찰에서 모처럼 맞는 경사다. 들뜬 스님과 불자들은 부처님 모신 대웅보전에 잔치법석을 차렸다. 18세기 명필이자 동국진체의 대가라는 원교 이광사의 멋들어진 ‘대웅보전’ 현판 아래서 오색 가사 입은 비구니스님 2명이 절집 안 부처를 응시하며 바라춤을 펼친다. 극락왕생의 실체를 담아냈다는 이 춤사위 사이로 호적(태평소)과 징, 북이 합주하는 범패(불교음악) 소리가 염불과 섞여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30일 오전 전라도 해남 두륜산 자락의 큰절 대흥사에서는 국가지정보물인 대웅보전 석가여래삼존불의 개금불사 점안법회가 열렸다. 임진왜란의 참상을 딛고 평화로운 대동세상을 갈망하며 1612년 만든 삼존불상이 새 옷을 차려입으며 새 기운으로 중생들과 만나는 자리다.
절의 꽃담길을 타고 금당천 건너 대웅보전으로 몰려온 수백명 불자들은 일찍부터 앞마당에 자리잡았다. 대웅전 안에는 2년여 작업 끝에 새 금물옷을 입은 석가여래, 비로자나, 약사여래상이 흰 장지 고깔에 싸인 채 친견을 기다렸다. 오전 10시40분 스님들의 천수경 독송으로 법회가 시작되자 고깔이 내려지고 깔끔하게 개금된 불상이 드러났다. 뒤이어 절의 큰 어른인 보선 회주 스님이 불화병풍 안에서 불상의 눈을 그려넣는 상징적인 점안 의례를 행한 뒤 팥알과 물을 불상 주위로 뿌리며 축원을 했다. 대웅전 안에 들어선 불자들은 절을 거듭하면서 앞서 스님이 바닥에 뿌린 팥알을 일일이 찾으며 품에 넣곤 했다. 김양순(49)씨는 “불전에 뿌린 공양물들을 가지면, 악귀를 쫓는 효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의 총본영이던 대흥사에서 삼존불상의 역사적 의미는 각별하다. 개금 과정에서 불상 뱃속 복장물을 조사해보니 전란의 참상, 폐허가 된 사찰을 일으킨 과정 등을 담은 발원문이 나와 호국사찰의 역사가 더욱 풍성해졌다.
법회 뒤 경내 성보박물관에서는 뜻깊은 전시도 이어졌다. 해남에서 문화후원활동을 해온 행촌문화재단이 올봄 이래 작가 40여명의 답사와 드로잉전을 이어가며 기획한 ‘남도아트프로젝트’의 결실인 ‘풍류남도만화방창’전이 개막한 것이다. 대흥사뿐 아니라 백련사, 미황사 등 해남, 강진 절집과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자취가 깃든 녹우당 고택, 해남읍 행촌미술관 등에서 동시에 열리는 작품 마당이다. 남도 절집이 처음 현대미술 무대로 등장한 이번 프로젝트에는 불교문화유산을 주된 소재로 삼은 다기한 작품들이 나와 눈맛을 돋운다. 김기라 작가는 백련사 대웅보전의 본존상 뒤에 엘이디 조명으로 빛을 내는 첨단 광배를 씌웠다. 도자기 조형물 작업을 해온 이수경 작가도 백련사 대웅보전에서 돌을 금박으로 싼 설치조형물을 신중단 불단 위에 얹었다. “모든 것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화두에서 착상해 만든 신작이라고 했다. 녹우당 근처의 고산 윤선도 전시관에서는 김억 판화가가 다산 정약용 유배지 근방의 현재 풍경을 공중에서 본 듯 장대한 조망으로 담아낸 3점의 진경 목판화를 내걸었다. 대흥사 성보박물관 주변에서는 조각가 전영일씨가 종이로 만든 이색 빛탑도 볼 수 있다.
3월 동백꽃 기행과 7월 드로잉 전시를 통해 남도 역사와 기운을 호흡해온 작가들은 사찰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강렬한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서용선씨는 “남도 사찰들은 전통미술의 보고란 점에서 지금도 미술가들에게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라며 “사찰을 현대미술가의 창작거점으로 활성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061)530-0114, 536-4116.
해남/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새로 금물을 입힌 대흥사 대웅보전 석가여래삼존불상 앞에서 비구니승려가 바라춤을 추며 축원하고 있다. 사진 노형석 기자
새로 금물을 입힌 대흥사 대웅보전 삼존불 앞에서 승려들이 북을 울리며 축원하고 있다. 사진 노형석 기자
전영일 작가가 종이로 작업한 빛탑이 대흥사 경내에 놓여 있다. 사진 노형석 기자
빛나는 광배를 형상화한 김기라 작가의 동그란 엘이디 조명조각. 백련사 대웅보전 본존불 뒤에 설치돼 실제 빛을 내뿜고 있다.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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