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넷 여제’ 자비네 마이어(오른쪽)가 자신의 오빠(가운데), 남편(왼쪽)과 함께 결성한 바셋호른 앙상블 ‘트리오 디 클라로네’. 남편과 오빠가 들고 있는 악기가 바셋호른이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외양·음색 닮은 ‘가족 악기들’
새달 ‘자비네 마이어 트리오’
‘클라리넷 사촌’ 바셋호른 연주
새달 ‘자비네 마이어 트리오’
‘클라리넷 사촌’ 바셋호른 연주
악기에도 가족이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클라리넷, 오보에, 플루트 같은 악기와 외양과 음색이 닮은 형제·자매나 사촌뻘 악기가 있다는 것이다.
9월22일 엘지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자비네 마이어 트리오’ 내한 공연에서는 클라리넷 족(族) 악기 ‘바셋 호른’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이 팀의 중심인 자비네 마이어(56)는 오늘날 살아 있는 여성 클라리넷 연주자 중 첫 손에 꼽히는 인물로 ‘클라리넷의 여제’라 불린다. 마이어는 모차르트 시대 이후 잊혀졌던 바셋 호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클라리넷 연주자인 자신의 오빠 볼프강 마이어, 남편 라이너 벨레와 함께 1983년 바셋 호른 앙상블 ‘트리오 디 클라로네’를 창단했다. 이들은 먼지 쌓인 바셋 호른 작품들을 발굴, 복원해 연주하는 한편 편곡을 통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클라리넷의 지평을 넓혀왔다.
본래 이번 내한공연은 ‘트리오 디 클라로네’의 무대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멤버 중 볼프강 마이어가 병환으로 투어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피아니스트 칼레 란달루가 대신 합류해 ‘자비네 마이어 트리오’로 바꿔 공연한다. 편성이 바뀌면서 연주할 곡도 달라졌지만 평소 듣기 힘든 바셋 호른 작품을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들은 멘델스존의 ‘바셋 호른과 클라리넷을 위한 작은 협주곡 1, 2번’, 브루흐의 ‘클라리넷과 바셋 호른을 위한 8개의 소품’ 등을 연주한다.
클라리넷 족 악기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비플랫(B♭) 클라리넷과 에이(A) 클라리넷이다. 바셋 호른은 이들에 비해 음역이 더 낮고, 음색은 어둡다. 바셋 호른은 악보에 기보된 음을 누르고 취구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완전 5도 낮은 소리가 나는 이조악기로, 클라리넷 족 악기 중에서도 특히 연주하기가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셋 호른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외면 당해 한 때 역사 저 편으로 사라질 뻔 했으나, 20세기에 들어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페라 <엘렉트라>에 사용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클라리넷 족인 이 악기가 왜 바셋 ‘호른’이라 불리게 된 걸까? 이 의아한 이름은 과거 바셋 호른의 관 끝이 뿔처럼 구부러졌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바셋 호른은 대중적인 악기가 아니었지만 모차르트를 비롯 이 악기를 편애한 몇몇 작곡가들이 집중적으로 쓴 덕에 널리 알려졌다. 바셋 호른의 음색을 몹시 사랑한 모차르트는 <마술피리>, <코지 판 투테>, <티토 황제의 자비> 등 자신의 오페라에 이 악기를 두루 사용했다.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역시 바셋 호른을 염두에 두고 1악장까지 썼다가 훗날 수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자비네 마이어는 작년 2월 내한 공연에서 이 곡의 전 악장을 바셋 호른으로 연주해 우수에 젖은 감성을 극대화했다.
바셋 호른 외에도 ‘잉글리시 호른’처럼 혈통을 헷갈리게 하는 이름의 가족 악기는 또 있다. 잉글리시 호른은 금관 악기인 호른과는 생김새도, 음색도 전혀 닮지 않은 오보에 족 악기다. 뿔(cor)처럼 관이 꺾인(angle) 옛 모습 때문에 코르 앙글레(cor angle)라는 프랑스어로 불리다가, 영국(anglais)으로 잘못 표기된 철자가 오해를 빚어 오늘날 잉글리시 호른이 됐다고 알려진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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