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임진택이 5일 서울 정릉 집에서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의 한 대목을 부르고 있다. 서산대사의 한시를 백범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것으로, 임옥상 화백이 그린 병풍에도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사진 손준현 기자
창작 판소리 ‘백범 김구’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한시 누적관객 800만명 돌파를 앞둔 영화 <암살>에는 백범 김구(김홍파 분)가 등장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으로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과 함께 친일파 암살작전을 계획한다. 김구(1876~1949)는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일제하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해방 이후 남북한 분단과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자 헌신하다, 극우세력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의 흉탄에 스러졌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로 환생했다. 서울시 광복70주년 기념공연에서 관객과 만난다. “백범 선생 붓을 들어 떨리는 손으로 한시 한 수를 쓰시는데 (…)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 ‘광대’ 임진택(65)이 부르는 진양조 소리는 유장했다. 결연했다. 부채로 보여준 발림(몸짓 표현·너름새)은 허공에 일필휘지 붓을 휘날렸다. 붓은 다시 죽비가 되어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이 땅을 후려쳤다.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눈대목(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중요 장면)이다. 임진택이 연극의 대본처럼 직접 창본(사설)을 쓰고 진양조, 중모리 같은 장단을 붙였다. 5일 북한산 자락 서울 정릉 집에서 그를 만났다. 1970~90년대 <소리내력>과 <똥바다>, <오적> 등 창작판소리로 시대를 조롱했다. 창작판소리 <남한산성>을 올리는 한편,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마당창극 <비가비명창 권삼득>을 연출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에서는 소리꾼 유봉 역을 맡기도 했다. 임진택-왕기철·기석 형제 명창
독립운동가 파란만장 삶 담아
2010년 초연…14일 무료공연
‘창본’ 임진택 “고전 레퍼토리로”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미군정의 홀대 속에 ‘개인 자격’ 김구로 귀국했다. 1987년 6월 항쟁 뒤 개정된 현행 헌법 전문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명시했지만, 당시 미군정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깔아뭉갰다. 그리고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된 조국의 상황은 남북으로 갈려 단독정부 수립을 향해 치닫는 등 악화일로를 걸었다. “삼천만 애국동포여!/ 마음속에 삼팔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삼팔선도/ 철폐되는 것!/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에는 협력하지 않겠소/ 나의 애달픈 고충을 살펴/ 한번 더 깊이 생각해주오.” 이 대목 역시 조국의 참담한 처지에 피를 토하는 심정을 진양조 장단에 실었다. 백범의 생애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안두희에게 암살당하는 장면이다. 임진택은 이 부분을 좀 더 소설적으로 구성했다. “시간에 따라 평면적으로 그릴 게 아니라고 봤어요. 일제하 중국에서 민족진영 통합과 좌우합작을 추진하다가 총탄을 맞은 사례를 먼저 복선으로 보여주고, 좌우대립을 넘어 통일을 지향하다 암살당하는 부분을 뒤에 중첩했습니다.” 2010년 초연 때 3시간 30분 분량이던 <백범 김구>는 이번에 3시간으로 압축했다. 창본으로서는 사실상 완성본이다. 1부 ‘빼앗긴 나라-청년 역정’, 2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3부 ‘갈라진 나라-해방시대’ 등 모두 3부로 이뤄졌다. 임진택과 함께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에 빛나는 명창 왕기철·왕기석 형제가 출연한다. 1부를 맡은 동생 왕기석 명창은 외모가 청년시절 김구 선생을 빼닮았다. 2부를 책임진 형 왕기철 명창은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의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3부에선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임진택이 통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김구의 고뇌를 표현한다. 공연 창본은 임진택이 썼지만, 선율을 만드는 작창은 세 사람이 각각 나눠서 맡았다. 임진택은 “올해가 가기 전에 작창까지 완성해 혼자 1, 2, 3부를 완창하고 시디도 만들 예정입니다. 또 하나의 고전판소리의 레퍼토리로 만들어 제자한테 전승시킬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14일 오후 6시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 무료공연으로 (02)351-6520으로 사전 신청하면 좌석을 배정 받을 수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가는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한시 누적관객 800만명 돌파를 앞둔 영화 <암살>에는 백범 김구(김홍파 분)가 등장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으로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과 함께 친일파 암살작전을 계획한다. 김구(1876~1949)는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일제하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해방 이후 남북한 분단과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자 헌신하다, 극우세력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의 흉탄에 스러졌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로 환생했다. 서울시 광복70주년 기념공연에서 관객과 만난다. “백범 선생 붓을 들어 떨리는 손으로 한시 한 수를 쓰시는데 (…)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 ‘광대’ 임진택(65)이 부르는 진양조 소리는 유장했다. 결연했다. 부채로 보여준 발림(몸짓 표현·너름새)은 허공에 일필휘지 붓을 휘날렸다. 붓은 다시 죽비가 되어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이 땅을 후려쳤다.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눈대목(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중요 장면)이다. 임진택이 연극의 대본처럼 직접 창본(사설)을 쓰고 진양조, 중모리 같은 장단을 붙였다. 5일 북한산 자락 서울 정릉 집에서 그를 만났다. 1970~90년대 <소리내력>과 <똥바다>, <오적> 등 창작판소리로 시대를 조롱했다. 창작판소리 <남한산성>을 올리는 한편,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마당창극 <비가비명창 권삼득>을 연출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에서는 소리꾼 유봉 역을 맡기도 했다. 임진택-왕기철·기석 형제 명창
독립운동가 파란만장 삶 담아
2010년 초연…14일 무료공연
‘창본’ 임진택 “고전 레퍼토리로”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미군정의 홀대 속에 ‘개인 자격’ 김구로 귀국했다. 1987년 6월 항쟁 뒤 개정된 현행 헌법 전문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명시했지만, 당시 미군정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깔아뭉갰다. 그리고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된 조국의 상황은 남북으로 갈려 단독정부 수립을 향해 치닫는 등 악화일로를 걸었다. “삼천만 애국동포여!/ 마음속에 삼팔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삼팔선도/ 철폐되는 것!/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에는 협력하지 않겠소/ 나의 애달픈 고충을 살펴/ 한번 더 깊이 생각해주오.” 이 대목 역시 조국의 참담한 처지에 피를 토하는 심정을 진양조 장단에 실었다. 백범의 생애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안두희에게 암살당하는 장면이다. 임진택은 이 부분을 좀 더 소설적으로 구성했다. “시간에 따라 평면적으로 그릴 게 아니라고 봤어요. 일제하 중국에서 민족진영 통합과 좌우합작을 추진하다가 총탄을 맞은 사례를 먼저 복선으로 보여주고, 좌우대립을 넘어 통일을 지향하다 암살당하는 부분을 뒤에 중첩했습니다.” 2010년 초연 때 3시간 30분 분량이던 <백범 김구>는 이번에 3시간으로 압축했다. 창본으로서는 사실상 완성본이다. 1부 ‘빼앗긴 나라-청년 역정’, 2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3부 ‘갈라진 나라-해방시대’ 등 모두 3부로 이뤄졌다. 임진택과 함께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에 빛나는 명창 왕기철·왕기석 형제가 출연한다. 1부를 맡은 동생 왕기석 명창은 외모가 청년시절 김구 선생을 빼닮았다. 2부를 책임진 형 왕기철 명창은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의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3부에선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임진택이 통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김구의 고뇌를 표현한다. 공연 창본은 임진택이 썼지만, 선율을 만드는 작창은 세 사람이 각각 나눠서 맡았다. 임진택은 “올해가 가기 전에 작창까지 완성해 혼자 1, 2, 3부를 완창하고 시디도 만들 예정입니다. 또 하나의 고전판소리의 레퍼토리로 만들어 제자한테 전승시킬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14일 오후 6시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 무료공연으로 (02)351-6520으로 사전 신청하면 좌석을 배정 받을 수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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