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한국춤의 거목’ 이매방 명인이 별세했다. 2008년 12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하얀사 고이 접어’ 공연에서 살풀이춤을 추던 이 명인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승무·살풀이춤 예능보유자 별세
7살때 ‘기생’ 권번학교서 춤 배워
호남춤 통합해 무대예술 승화도
7살때 ‘기생’ 권번학교서 춤 배워
호남춤 통합해 무대예술 승화도
“느린 염불 장단에 맞춰 엎드렸던 그가 서서히 일어서며 손끝에 늘어진 장삼을 허공에 뿌린다. 그의 기(氣)가 실린 장삼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힘차게 허공을 비상하곤 다시 살포시 내려앉았다. 장삼의 선이 곱다. 그 장삼은 인생의 수많은 고민을 품은 채 허공을 맴돌았다. 그가 느리디느린 진양조 가락에 맞추어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버선코를 쳐들었다.”(<한겨레> 2014년 10월8일치)
‘한국 춤의 거목’ 이매방(본명 이규태) 명인이 7일 오전 9시15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
이 명인은 여성보다도 더 여성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 그래서 그의 춤 철학은 ‘고운 마음’에서 출발한다.
1927년 전남 목포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대까지 세습무를 해온 집안이다. 할아버지 이대조는 목포권번(기생들의 조합)에서 승무와 고법을 가르치던 명무·명고수로 호남 일대를 쩌렁하게 울리던 명인이었다. 7살 된 이 명인의 귀에 옆집 사는 함국향 목포권번 권번장의 속삭임이 들렸다. “너는 태도가 곱고 용모도 빼어나니 권번에 가 춤을 배우면 크게 성공할 것이다.” 이 명인은 권번에서 검무, 승무, 법무를 차례로 배웠다.
초등학교 때는 5년간 중국에 살면서 전설적 중국 무용가인 메이란팡(1894~1961)에게서 칼춤과 등불춤을 배웠다. 메이란팡은 경극 <패왕별희>를 만든 이로, 영화 <매란방>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열다섯살 때 우연히 판소리 명창 임방울의 공연에서 승무를 추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승무와 살풀이춤을 비롯해 입춤, 검무, 장검무, 장고춤, 사풍정감, 초립동, 승천무, 대감놀이, 기원무, 보렴무, 고무, 소고춤, 사랑가, 화랑도, 한량무, 신선무, 춘향전 등 19종의 춤을 췄다.
생존 예술가 중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년)와 제97호 살풀이춤(1990년) 등 두 분야의 예능보유자였다. 호남춤을 통합해 무대양식화한 ‘호남춤의 명인’으로 불린다. 목포권번의 춤을 무대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승무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호남형 승무’로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忍辱)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살풀이춤은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닌 춤으로 정적미의 단아한 멋과 정과 한이 서린 비장미를 함께 갖추고 있다. 1960년대 삼고무, 오고무, 칠고무 등 일종의 북춤인 고무를 비롯해 검무, 기원무, 초립동 등을 직접 창안해 그만의 춤세계를 구축했고, 200여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지난해 8월에는 여든일곱살의 나이로 제자들이 연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호남 기방예술의 정통계보를 잇는 ‘입춤’을 추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명자(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제27호 승무 전수교육조교)씨, 딸 현주(이매방춤 이수자)씨, 사위 이혁렬(이매방아트댄스컴퍼니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10일 오전 7시30분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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