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페스트'의 한 장면.
리뷰 l 오태석 연출 연극 ‘템페스트’
폭풍아 몰아쳐라, 파도여 배를 삼켜라! 미치광이처럼 산발한 질지왕은 진천동지하듯 북을 두드린다. 칠흑 같은 극장에 일순 질풍노도가 몰아친다. 배에 탔던 자비왕 일행은 혼비백산 놀라, 소매를 길게 이어붙인 장삼을 허공에 흩뿌린다. 장삼 자락은 거센 파도이며, 하얀 물거품이며, 끝도 없는 폭풍우다. 5m가 넘는 장삼은 산발한 원귀처럼 집채만한 파도가 돼 객석을 겁박한다. 도술을 익힌 질지왕이 다시 북을 내리친다. 무대는 붉은 부채와 붉은 조명과 뿌연 연기로 가득하다. 배에 불이 붙었다. 마침내 배는 난파한다.
배경 바꿔 한국적 연희로 재탄생
탈춤·판소리…민속놀이 총동원
대사 줄이고 노래·춤 비중 높여 오태석 연출이 한국적 연희로 재탄생시킨 셰익스피어 원작의 <템페스트>가 13일 다시 막을 올렸다. 2011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과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으로 국내외에서 작품성이 인정된 연극이다. 이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 중의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인 <템페스트>를 <삼국유사>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 점이다. 원작은 동생에게 속아 공국을 빼앗기고 어린 딸과 함께 무인도에 버려진 프로스페로의 복수와 용서를 그린다. 오태석은 연극의 배경을 <삼국유사> 가락국기로 설정해, 프로스페로가 추방된 외딴섬을 5세기 가야와 신라가 다투던 남해안의 섬으로 대체했다. 주인공인 프로스페로는 질지왕(가락국 8대 왕)으로, 원수인 나폴리 왕 알론조는 자비왕(신라 20대 왕)으로 시대와 인물이 바뀐다. 배경을 달리했다고 연극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태석표 <템페스트>의 또 다른 특징은 우리 전통문화, 특히 민속예술의 알맹이를 고스란히 담아낸 데 있다. 씻김굿, 산대놀이(탈춤), 백중놀이, 진도아리랑은 물론이고 판소리, 만담까지 아울러 연극 곳곳에 민속놀이의 고갱이들을 꼭꼭 쟁여뒀다. 마치 한국 민속놀이 갈라쇼 같다. 이 연극은 굿처럼 탈춤처럼 우리 곁에 온 셰익스피어다. 노래와 춤의 비중이 높다. 넋전(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인형)으로 보이는 탈을 쓴 여덟 허재비들은 오리, 여우, 돼지들로 변하면서 맛깔나게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 대사는 우리 전통적 운율인 3·4조, 4·4조의 입말로 옮겼다. 연극은 비극적이지 않고 해학적이다. 특히 광대들이 화간 통정해 아이를 낳는 장면은 웃음을 터뜨리고 무릎을 치게 하는 명장면이다. 노래와 춤, 의식 등을 중요한 요소로 잡은 만큼, 줄거리와 대사는 고도로 압축했다. 대사를 들으려 너무 귀를 기울이다간 되레 몰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극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노래와 춤을 즐기다 보면 큰 그림이 떠오른다. 공연시간은 80분. 이달 30일까지 서울 남산골한옥마을 안 서울남산국악당. (02)2261-050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탈춤·판소리…민속놀이 총동원
대사 줄이고 노래·춤 비중 높여 오태석 연출이 한국적 연희로 재탄생시킨 셰익스피어 원작의 <템페스트>가 13일 다시 막을 올렸다. 2011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과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으로 국내외에서 작품성이 인정된 연극이다. 이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 중의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인 <템페스트>를 <삼국유사>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 점이다. 원작은 동생에게 속아 공국을 빼앗기고 어린 딸과 함께 무인도에 버려진 프로스페로의 복수와 용서를 그린다. 오태석은 연극의 배경을 <삼국유사> 가락국기로 설정해, 프로스페로가 추방된 외딴섬을 5세기 가야와 신라가 다투던 남해안의 섬으로 대체했다. 주인공인 프로스페로는 질지왕(가락국 8대 왕)으로, 원수인 나폴리 왕 알론조는 자비왕(신라 20대 왕)으로 시대와 인물이 바뀐다. 배경을 달리했다고 연극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태석표 <템페스트>의 또 다른 특징은 우리 전통문화, 특히 민속예술의 알맹이를 고스란히 담아낸 데 있다. 씻김굿, 산대놀이(탈춤), 백중놀이, 진도아리랑은 물론이고 판소리, 만담까지 아울러 연극 곳곳에 민속놀이의 고갱이들을 꼭꼭 쟁여뒀다. 마치 한국 민속놀이 갈라쇼 같다. 이 연극은 굿처럼 탈춤처럼 우리 곁에 온 셰익스피어다. 노래와 춤의 비중이 높다. 넋전(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인형)으로 보이는 탈을 쓴 여덟 허재비들은 오리, 여우, 돼지들로 변하면서 맛깔나게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 대사는 우리 전통적 운율인 3·4조, 4·4조의 입말로 옮겼다. 연극은 비극적이지 않고 해학적이다. 특히 광대들이 화간 통정해 아이를 낳는 장면은 웃음을 터뜨리고 무릎을 치게 하는 명장면이다. 노래와 춤, 의식 등을 중요한 요소로 잡은 만큼, 줄거리와 대사는 고도로 압축했다. 대사를 들으려 너무 귀를 기울이다간 되레 몰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극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노래와 춤을 즐기다 보면 큰 그림이 떠오른다. 공연시간은 80분. 이달 30일까지 서울 남산골한옥마을 안 서울남산국악당. (02)2261-050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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