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흑백사진 속 대자연의 풍경은 모든 것이 명쾌하면서도 섬세한 결들로 가득하다. 검정과 하양이라는 흑백의 구성요소도 이 거장의 앵글 속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미국 요세미티 공원의 깎아지른 하프돔 절벽의 암반들과 뉴멕시코 사막 언덕의 모래 결, 캘리포니아 해변의 파도가 그리는 포말들은 빛이 와닿는 정도에 따라 여러 층위의 색깔 톤으로 갈라져 마치 손으로 만져질 듯한 질감을 느끼게 한다.
절벽 암반·모래결·파도 포말 등
빛의 알갱이가 풍경속에 올올이
거장의 독창적 인화기법 돋보여
풍경사진의 절대 거장으로 추앙받는 미국 사진가 앤설 애덤스(안셀 아담스·1902~1984)의 첫 한국 개인전이 20일부터 시작된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은 실제 자연보다 더욱 실감나고 웅장한 미국 서부의 풍경들로 가득하다. 원래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려다 서부 요세미티의 숲과 계곡, 산에 빠져 풍경사진가가 된 앤설 애덤스는 작가로서 가장 영예로운 전인적인 삶을 살았다. 소재와 형식, 기법의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성취를 일궈내며 사진의 패러다임을 바꿨을 뿐 아니라, ‘시에라클럽’이란 환경보존단체에 평생 봉직하면서 자신의 사진들을 통해 미국의 자연생태를 보존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환경운동가로도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앤설 애덤스의 사진을 제대로 느끼려면 ‘존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한 현상·인화 기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 현상·인화 시스템을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개발하면서, 빛의 알갱이가 세부의 풍경 속에 올올이 스며든 스트레이트 사진의 새 지평을 열었다. 검정부터 하양까지 무려 11단계에 이르는 화면의 농도를 세분화한 존 시스템의 세례를 받은 앵글 속 폭포와 하늘, 대지, 언덕, 바다 등은 미세한 세부와 거대한 스펙터클이 함께 공존하는 우주의 비경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앤설 애덤스가 찍은 불후의 걸작으로 꼽히는 41년작 ‘헤르난데스 산의 월출’. 기획사 디투씨 제공
안셀 아담스가 1937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찍은 여성작가 조지아 오키프(오른쪽)와 오빌 콕스의 사진.
1927년 요세미티의 웅대한 대자연을 담은 초기작품 ‘면사포 폭포’.
그의 작품 70여점이 내걸린 전시장은 숱하게 복제되고 책 등에 실린 유명한 자연이미지들만이 전부는 아니다. 출품작들 대부분이 아들과 딸들을 위해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직접 선별한 클래식이미지라고 불리는 원판 빈티지 사진들 묶음(포트폴리오)으로 채워져 있다. 거장의 숨결과 인화 과정에 몸소 쏟은 노력의 흔적들을 실감할 수 있는 셈이다. 앤설 애덤스 자녀들과의 협의 아래 한국에 들어온 이 사진 묶음들은 15개 섹션으로 구획되어 20년대 초기작부터 존 시스템을 개발한 30~40년대 중년기를 거쳐 말년의 원숙한 우주적 대작들까지 자연스러운 작업의 흐름을 이룬다. 앤설 애덤스는 냉정한 현실 그대로의 기록에서 사진적 미감을 찾는 스트레이트 사진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20년대 몽환적인 숲을 찍은 1섹션의 작품은 흐릿한 배경 아래 회화를 닮으려던 초창기 예술사진에서 그의 사진 작업이 출발했음을 알려준다. 존 시스템으로 처음 찍은 서부의 사막 작업들이나 요세미티 못지않게 유명한 서부 캘리포니아 해변의 파도치는 풍경을 감상한 뒤 말미의 14, 15섹션에서는 불후의 걸작 ‘헤르난데스 산의 월출’(41년작)과 스티브 잡스가 애장했다는 ‘시에라네바다의 겨울 일출’ 등을 만나게 된다.
그의 최고 걸작 ‘헤르난데스 산의 월출’ 프린트 앞에서 포즈를 취한 말년의 안셀 아담스.
전시의 또다른 매력은 앤설 애덤스의 생소한 인물·건축 사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작가 조지아 오키프나 오키프의 남편인 사진 거장 스티글리츠를 찍은 초상사진이나 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소개된 재미국 일본이민자들의 수용소, 시골의 교회, 집 등을 찍은 작업들이 자연풍경과는 또다른 거장의 인간적인 품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사진사 거장들의 빈티지 원본 사진들이 대개 ‘에이바이텐’으로 불리는 8인치×10인치(20.2×25.6㎝)의 작은 크기인 데 비해 그보다 큰 32×40인치짜리 사진들을 생생한 원본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각별하다. 10월19일까지. (02)399-111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