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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치명적 이별, 찬란하고도 비극적인

등록 2015-08-24 19:22수정 2015-08-24 21:48

장 주네 원작의 연극 <스플렌디즈>은 그의 영화 <사랑의 찬가>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연출가는 영화가 비치는 스크린 아래, 배우를 보여주며 이 연극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임을 보여준다.  프레데릭 노지시엘 제공
장 주네 원작의 연극 <스플렌디즈>은 그의 영화 <사랑의 찬가>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연출가는 영화가 비치는 스크린 아래, 배우를 보여주며 이 연극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임을 보여준다. 프레데릭 노지시엘 제공
리뷰 l 연극 ‘스플렌디즈’
연극무대에서 흑백영화가 상영됐다. 배경은 감옥. 거친 질감의 흑백 화면보다 더 절망적이고 음울하게 감옥을 표현할 수는 없다. 자유와 욕망이 박탈된 존재, 죄수가 있다. 벽을 사이에 둔 두 남성 죄수는 서로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만날 수 없다. 벽의 작은 구멍 사이로 담배연기를 나눠 피고, 벽 넘어 서로 상상하며 자위를 한다. 감시와 처벌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의 상징, 경찰도 있다. 경찰은 이들의 ‘만질 수 없는 상상의 사랑’을 관음증적으로 훔쳐본다. 오랫동안 절도죄로 수감됐던 프랑스의 작가 장 주네(1910~1986)가 만든 26분짜리 영화 <사랑의 찬가>(1950)다. 성기를 드러낸 장면 때문에 오랫동안 금지됐지만 이제 전 세계 영화자료관에서 상영되는 명작이다.

장 주네 원작…올 1월 프랑스 초연
그의 영화 ‘사랑의 찬가’로 시작
몸담았던 세계에 대한 배신 그려

영화는 연극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스크린이 천장 위로 올라가자, 무대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에는 영화에서 담배를 나눠 피던 두 죄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연출자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그 영화가 곧 이 연극’이라며 노골적으로 오마주했다. 장 주네 원작의 연극 <스플렌디즈(Splendid’s)>가 지난 21, 2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작가는 1948년 탈고한 이 작품을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다. 1993년에 복사본이 발견돼, 올해 1월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에서 초연됐다. 이번 서울 무대는 세계 순회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공연이다.

영화의 감옥을 닮은 건물은 스플렌디드 호텔. 복도에 빼곡한 감방 대신 8개의 객실이 벽을 맞대고 있다. 호텔엔 7명의 갱 단원이 백만장자의 딸을 인질로 붙잡고 경찰과 대치중이다. 그런데 실수로 인질을 죽였다. 한 명이 여장을 하고 인질인 척한다. 갱 단원 출신 경찰 한 명이 호텔로 들어와 대화를 시도한다. 갱 단원 편에 서려는 것처럼 보이던 경찰은 마지막에 그들을 배신하고 모두 죽여버린다.

영화, 연극, 장 주네의 삶은 오버랩된다. 도둑, 부랑자, 남창이었던 장 주네는 이 작품을 감옥에서 썼다. 갱 단원 편처럼 보이지만 갱 단원을 죽이는 경찰은 장 주네의 삶과 닮았다. 갱 단원의 일부가 되고 싶었지만 그들을 파멸시키는 경찰처럼, 작가도 감옥에서 석방되기 위해 범죄세계와 단절을 시도했다. 그는 그것을 배신으로 봤다. 그러므로‘스플렌디드’(splendid)라는 단어는 감옥을 벗어난다는 점에선 찬란하지만, 그가 살던 세계에 대한 배신이라는 점에서는 비극적이다. 찬란하지만 비극적인 ‘감옥과의 결별’이다. 실제 장 주네는 석방 뒤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연극은 친절하지 않다. 팬티만 입은 배우, 상·하의만 입은 배우, 양복을 입은 배우 등 누가 경찰인지 누가 갱 단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시적 은유로 가득한 대사는 자막을 따라 읽어도, 내용을 알기 힘들다. 하지만 객석은 진지했다. 기침 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장 주네라는 이름이 주는 ‘아우라’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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