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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탈 많고 말 많은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등록 2015-08-24 19:31수정 2015-08-25 11:23

도난의 역사
이탈리아 명인이 17~18세기 제작
바이올린 등 600점만 현존 추산
수십 수백억 호가에 도난 기승

논란의 역사
천문학적 가격 타당성 논란 지속
음색 실험서 특출한 결과 안나와
그래도 보유 열망은 계속 이어져
저명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토텐버그가 1980년 도난당했다가 지난 6월 되찾은 173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에임스’. 이 명품 바이올린은 사망한 절도 혐의자의 전 부인이 감정을 의뢰했다가 고유식별 번호를 알아본 감정사가 신고하면서 되찾게 됐다.  뉴욕/AP 연합뉴스
저명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토텐버그가 1980년 도난당했다가 지난 6월 되찾은 173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에임스’. 이 명품 바이올린은 사망한 절도 혐의자의 전 부인이 감정을 의뢰했다가 고유식별 번호를 알아본 감정사가 신고하면서 되찾게 됐다. 뉴욕/AP 연합뉴스
지난 6월26일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방. 낡은 바이올린 가방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인 노부인에게 고악기 감정사가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이 바이올린이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것이고, 나쁜 뉴스는 ‘도난당한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겁니다.”

2시간 뒤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고유 식별표시로 악기의 정체를 알아본 감정사가 재빨리 신고한 것이었다. 정밀감정 결과, 이 바이올린은 저명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토텐버그가 1980년 도둑맞은 173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에임스’로 확인됐다. 토텐버그는 죽기 전까지 자신의 분신 에임스를 찾아 헤맸다. 감정을 의뢰한 노부인은 경찰 조사에서 전남편이 유산으로 남겼다고 주장했다. 노부인의 전남편은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토텐버그가 생전에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수색영장을 신청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토텐버그의 세 딸은 되찾은 악기를 경매에 부치기로 했다. 단, 소장가가 아니라 연주자에게 판매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이야기는 이달 초 토텐버그의 딸들이 세상에 공개했다.

■ 도난의 역사 ‘스트라디바리우스’란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제작한 악기다. 균일한 음정과 맑고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하는 독보적인 명기다. 스트라디바리는 1100여점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하프, 기타를 제작했는데 현재 600여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50여점이 실제 연주에 사용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격은 보관상태, 음질 등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10억원 이상을 호가한다. 특히 1700~1725년 사이 ‘황금기’에 만들어진 것은 수백억원에도 거래된다. 지난 2011년 고악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영국 런던의 타리시오 경매장에서는 1721년산 ‘레이디 블런트’ 바이올린이 980만파운드(182억원)에 거래됐다. 비록 유찰됐으나 2014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는 1719년산 ‘맥도널드’ 비올라가 최소 경매가 4500만달러(532억원)에 나오기도 했다. 투자 목적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도 많다. 캐나다 예술잡지 <바이스 매거진>은 지난해 “스트라디바리우스 투자펀드가 나타나 천문학적인 악기 가격을 더 상승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적 가치가 높아질수록 도난 사건도 기승을 부렸다. 2010년에는 한국계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진이 기차역 근처에서 커피를 사려고 잠시 바이올린 가방을 내려놓았다가 120만파운드(22억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도둑맞아 곤욕을 치렀다. 2014년에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2인조 강도가 밀워키교향악단 수석연주자 프랭크 아몬드를 전기충격기로 기절시킨 뒤 1715년산 바이올린을 빼앗아 달아났다.

■ 논란의 역사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명기가 된 ‘비결’은 뭘까. 일각에서는 1645년께부터 100년간의 ‘미니 빙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추운 기후로 인해 나무에 촘촘하고 균일한 나이테가 만들어졌고, 이 고밀도 목재가 소리의 파장을 균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008년 네덜란드 과학자들이 엑스선 촬영을 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몸체 앞면은 가문비나무인 스프루스, 내부는 버드나무, 뒷면과 옆면은 단풍나무로 이뤄지는데, 나무의 성분 조합이 음색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천문학적 가격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됐다. 연주 목적이라면 현대 악기에서도 충분히 좋은 음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수차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얻은 잠정적 결론이다. 심지어 300년 이상 돼 바짝 건조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 악기를 향한 열망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단순한 악기 이상의 영감과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워낙 고가이다 보니, 연주자들은 직접 소유하기보다 임차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첼리스트 정명화가 1731년산 첼로 ‘브라가’를 1967년 4만달러에 구입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수빈과 김지윤은 각각 1709년산 ‘엑스-켐프너’ 바이올린과 1708년산 ‘슈트라우스’ 바이올린을 빌려 사용중이다. 올해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우승 특전으로 4년간 일본음악재단이 소유한 1708년산 ‘허긴스’를 대여받게 됐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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