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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10년 고민, 한달 붓짓…솔거의 혼 불러내”

등록 2015-08-25 20:41

한국화가 박대성씨가 경주솔거미술관에 나온 대작 ‘금수강산 백화만발’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꽃잎 같은 경주 남산 계곡 산자락들 위로 반가사유상, 석굴암, 하회탈 등의 문화유산들이 내비치고 산자락 사이 강물이 흘러가는 이 작품을 두고 작가는 “갈라진 이땅의 역사와 자연이 하나되는 대화합의 세상을 염원하며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화가 박대성씨가 경주솔거미술관에 나온 대작 ‘금수강산 백화만발’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꽃잎 같은 경주 남산 계곡 산자락들 위로 반가사유상, 석굴암, 하회탈 등의 문화유산들이 내비치고 산자락 사이 강물이 흘러가는 이 작품을 두고 작가는 “갈라진 이땅의 역사와 자연이 하나되는 대화합의 세상을 염원하며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성 ‘붓끝 아래의 남산’ 전

2000년 경주 남산 정착…‘제2 고향’
작품 기증한 솔거미술관서 기념전
남산 풍경 담은 ‘높이 5m’ 대작 등
‘1000년 신라’ 일취월장 기상 되살려
경주 남산의 솔 숲이 야수처럼 활개치며 뻗쳐오른다. 무성한 솔잎과 굵고 잔 가지를 이고서 구불거리며 치솟는 소나무 등걸은 드높은 함성의 형상이다. 짙은 농묵과 엷은 담묵을 자유자재로 치고 부리는 붓질과 화폭 좌우를 솔가지로 꽉채운 구도가 만들어낸 장쾌한 솔숲의 진경. 그 아래 괴석들과 맑은 연못의 백로가 거니는 소담한 풍경이 얼비친다. 1000년 신라가 품었던 일취월장과 법고창신의 기상이 그림으로 되살아났다.

한국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70)씨는 최근 득의작 ‘솔거의 노래’를 21일 개관한 경주 천군동 솔거미술관에 내걸었다. 신라 임금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무덤을 싸안은 경주 남산 서쪽 삼릉골 솔숲이 약동하는 높이 5m짜리 이 대작은 작가 작업실 창밖 풍경이다. 미술관에서 신작, 기증작들로 기념전을 차린 작가는 이 작품이 “황룡사에 노송도를 그린 신라거장 솔거의 마음을 품고 붓질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림 속 괴석에 솔거에 대한 기억을 적어놓은 것도 이런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2000년 남산에 정착한 뒤로 날마다 창밖 삼릉골 솔숲을 징글징글 바라봤지요. 1300여년전 솔거의 그림소재였고, 신라인의 기상또한 깃든 솔숲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까, 10년여 고민만 했지요. 최근 얼개와 구도를 정하니 붓질엔 1달여밖에 안걸렸어요. 어릴 적 그림으로 저를 이끌었던 솔거의 혼을 재현한다는 일념을 풀어낸 겁니다.”

‘붓끝 아래의 남산’이란 제목을 단 개관전에서는 ‘솔거의 노래’ 양옆에 내걸린 다른 대작 두 점도 주목된다. 경주 남산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꽃 모양으로 펼쳐놓고 산자락 갈래마다 황룡사탑, 석굴암 등의 이땅 문화유산들을 그려넣은 ‘금수강산 백화만발’과 독도 바위산 위로 용이 빨간 여의주를 움켜잡고 날아가는 ‘독도이야기’다. 작가는 “신라인을 자처해온 나의 정체성과 한반도 국운상승의 염원을 담아낸 작품들”이라고 일러준다. “한국화의 진가는 사실성과 추상성이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죠. ‘금수강산 백화만발’이 추상화한 남산 전경에 문화유산들과 합수하는 두갈래 강을 걸쳐놓고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와 미래의 화해를 이야기한다면, ‘독도이야기’는 독도 진경 위로 전통 민화의 운룡도 이미지를 일본을 상징하는 빨간 해 모양 여의주를 움켜잡은 형태로 그려넣었어요. 문무왕의 호국 정신을 재해석한 것이지요.”

박씨의 그림은 형식과 유파에서 자유롭다. 한국전쟁 때 왼팔을 잃은 아픔과 무학의 설움을 딛고 독학한 이 대가는 18~19세기의 진경그림들과 김정희의 추사체, 갑골문의 글씨를 계속 공부해왔다. 90년대 이래 실크로드와 미국 뉴욕 화단도 두루 기행했다. 현대와 전통, 동서양의 미술유산들을 섭렵하며 장쾌한 필력과 섬세한 서정이 함께 공존하는 화풍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엔 회한도 있다. 수년 전 작품을 기증하고 박대성미술관을 짓기로 경주시와 합의했지만 지역 미술계의 특혜시비로 좌절되고,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전시하는 솔거미술관으로 바뀌어 아쉬움이 컸다. 기증을 철회하려했지만, “고향 같은 경주에서 잠든 신라유산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일념에 그림과 글씨, 벼루와 먹 등 830점을 기증하고 더욱 자신을 열어 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참 멀리 달려왔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은 살기위해 그려온 삶이었으니, 이제 다시 다른 길을 걸어가려고 생각해봅니다. 산하의 진경을 넘어 나만이 꿈꾸는 회화의 이상세계를 현대적 형상으로 담아내려 합니다.”

마침 올해부터 젊은 동지가 생겼다. 영화배우 유준상씨다. 신작영화 <고산자>에 난초치는 대원군으로 등장하는 유씨는 연기에 필요한 그림을 배우러 왔다가 박 작가의 작품에 빠져 그의 삶을 조명한 단편영화와 음악을 만들고 있다. 내년엔 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들과 영화, 박씨의 신작들을 한데 아울러 전시도 함께 열 계획이라고 한다. ‘대중문화와 한국화가 어울리는 융복합 예술프로젝트’라고 소개한 작가는 “젊은 대중예술인과 그림을 이야기하는 복을 누리고있다”고 웃었다. 전시는 11월29일까지. (054)777-6782.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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