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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불쌍’, 베를린의 주말 밤을 적시다

등록 2015-08-30 20:51

국립현대무용단의 '불쌍'이 지난 28, 29일 독일 최대의 현대무용축제인 ‘탄츠 임 아우구스트’ 무대에서 잇단 커튼콜을 받았다. ‘탄츠 임 아우구스트’ 제공
국립현대무용단의 '불쌍'이 지난 28, 29일 독일 최대의 현대무용축제인 ‘탄츠 임 아우구스트’ 무대에서 잇단 커튼콜을 받았다. ‘탄츠 임 아우구스트’ 제공
독일 현대무용축제에 간 한국춤
“브라보, 코레아니셔 탄츠(한국 춤)!” 베를린의 토요일 밤, 다섯 번의 커튼콜이 울렸다. 객석을 꽉 채운 800명의 눈과 입과 손은 14명의 춤꾼에게 바쳐졌다. 무용수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환호는 멈추지 않았다. 춤꾼 예효승(41)의 눈이 젖었다. 베를린 거주 경험이 있는 그는 이곳이 얼마나 큰 무대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지난 28일(현지시각)에 이어 29일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애순)의 <불쌍>이 독일 최대의 현대무용축제인 ‘탄츠 임 아우구스트’(Tanz Im August) 무대에 섰다. 이들이 공연한 극장 ‘폴크스뷔네’(Volksb<00FC>hne)는 독일을 대표하는 공연장이다. <햄릿 기계>로 유명한 독일의 극작가 하이너 뮐러(1929~1995)가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번 무용축제에서는 국립현대무용단뿐 아니라, 또 다른 두 개의 한국 참가작들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안무가 이재영을 주축으로 하는 ‘시나브로 가슴에’의 <이퀼리브리엄>과 안무가 정금형의 <7가지 방법>이다. 베를린의 8월, 한국 춤바람이 불었다. 세계 20개국 공연단이 참여한 이번 축제는 지난 13일 개막해 다음달 4일까지 이어진다.

■ ‘인민극장’ 사로잡은 ‘불쌍’

밤 9시부터 1시간 남짓한 공연 내내 관객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춤꾼의 강렬한 움직임은 때로는 ‘스타카토’처럼 분절적이다가도, 때로는 예효승과 한상률의 2인무처럼 유머러스했다. 춤꾼의 섬세한 몸짓은 때로는 강한 비트로, 때로는 몽환적인 음악에 실려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공연에는 모두 1000개의 바구니가 사용됐다. 빨강, 하양, 파랑 등 색색 바구니를 쌓고, 허물고, 던지며 파괴적 현대사회를 은유했다. 플라스틱 바구니와 스티로폼을 통해 현대사회의 일회성 소모품이라는 물성(物性)을 드러냄으로써, 소외되고 파괴된 인성(人性)을 상대적으로 극명하게 돋을새김하기도 했다.

<불쌍>은 종교적 상징인 불상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다. 불상이 신의 얼굴이 아닌 우리의 얼굴임을 역설한다. <이미아직>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주목한 안애순 감독은 <불쌍>에서도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성스러움과 속된 것의 경계를 어김없이 담아냈다.

공연 뒤 관객들은 한국의 전통을 넘어 현대성에 주목했다. 베를린 시민 베른트 포이흐트너는 “한국의 전통춤을 보지는 못했지만,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춤으로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녔다”고 호평했다. 인도 출신 여성 사비트리처린은 “던지고 파괴하는 혼란스러운 장면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조언을 던진 관객도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조명 전문가 피퐁은 “매우 환상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구성과 움직임이 좀더 자유로웠으면 어땠을까”라는 의견을 냈다. 2009년 초연된 <불쌍>은 지난 6월과 7월 이탈리아와 몰타에서도 공연했다. 노르웨이에서도 내년 초청 의사를 밝혔다.

이재영 안무의 '이퀼리브리엄'.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이재영 안무의 '이퀼리브리엄'.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 춤꾼의 눈은 왜 젖었을까

“이런 엄청난 무대에 서려니까 긴장이 됐어요. 부담이 컸어요. 공연을 잘 마치고 나니 울컥한 것이죠. 한국 현대무용이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된 듯해요.” 춤꾼 예효승이 ‘자신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다. 다른 춤꾼들도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베를린 도심의 폴크스뷔네로 가려면 먼저 옛 동독 지역이었던 ‘로자 룩셈부르크 광장’부터 찾아야 한다. 폴란드 태생의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는 이상주의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다. 급진적인 혁명파의 중심에 있던 그는 로마시대 노예반란을 일으킨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을 따 스파르타쿠스단(독일 공산당의 전신)을 결성하고 급진적 혁명 활동을 벌였다. 이 광장은 그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았다.

이 광장에 우뚝 솟은 폴크스뷔네는 설립 목적이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연극 공연’이다. 윤종석 주독일한국문화원장은 “하이너 뮐러 등이 활동한 매우 중요한 극장으로, ‘인민극장’으로 부른다”고 했다. 이런 무대에서 커튼콜을 받은 춤꾼들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다고 해서 이상한 건 아니다.

정금형 안무의 '7가지 방법'. 손준현 기자
정금형 안무의 '7가지 방법'. 손준현 기자
■ ‘시나브로 가슴에’와 정금형의 공연도 매진

이재영이 이끄는 ‘시나브로 가슴에’와 정금형의 베를린 공연도 한국 스태프가 표를 구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난 27~29일 ‘헤벨 암 우퍼’에서 두 공연이 잇달아 열렸다. 몸의 특징을 강조하는 안무로 주목받고 있는 시나브로 가슴에는 <이퀼리브리엄>을 통해 균형-불균형, 작용-반작용의 관계를 탐색하며 관객의 눈과 귀를 잡아챘다. 두 춤꾼이 키재기 시늉을 하자 객석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관객과 소통하는 안무다.

정금형의 <7가지 방법>은 여러모로 독특한 작품이었다. 7개의 오브제와 움직임으로 사람과 기계의 섹스를 표현했다. 무용이라기보다는 퍼포먼스에 기까웠다.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큐레이터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표현되는 유머러스한 에로티시즘이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성적인 코드가 민망했는지 한 노부인은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했다.

축제 관계자들이 ‘한국 현대무용의 수준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예술경영지원센터 관계자가 전했다. 정금형과 시나브로 가슴에의 이번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해외공연 지원사업(센터스테이지코리아)으로 이뤄졌다.


“최고 무대서 커튼콜 통했구나 싶어 눈물”

감동이 전파되듯, 눈물도 전파된다. <불쌍> 공연에서 춤꾼의 젖은 눈을 보자,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도 눈물을 비쳤다. “증명받음의 눈물이랄까, 내 작업이 전혀 다른 문화인 독일에서도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걱정했거든요. 세계 예술가들이 선망하는 ‘가장 핫한 무대’ 베를린에서 잇단 커튼콜을 받으니까 나도 모르게 나온 눈물입니다.”

공연 전에 단원들은 모두 긴장했다. “김건중 무용수가 네덜란드에서 같이 춤을 췄던 친구들이 구경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들 눈에 자기가 어떻게 비칠지, 잔뜩 긴장을 하더라고요.”

안 감독은 무용수들을 어떤 기준으로 뽑을까? “석고 데생을 하면서 표현이 굳어지는 것처럼, 학습된 몸이나 테크닉에 길들여진 몸보다는 표현을 자유자재로 하는 몸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기만의 자유로운 몸짓이 있어야 하고, 안무가와 소통하는 공감능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안 감독은 내년 해외공연을 앞두고 이번에 독일 관객들과 피드백을 듬뿍 받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라는 피드백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겁니다. 그게 지속적인 레퍼토리의 바탕이 되거든요.” 안 감독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레퍼토리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에서 <이미아직>을 올린다. 또 노르웨이 무용축제 ‘단센스 후스’에는 <불쌍>을 들고 갈 예정이다.

베를린/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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