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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노동 숨결 담아 먹으로 그린 사물들

등록 2015-08-31 19:12수정 2015-08-31 19:13

 ‘장벽’. 사진 작가 제공
‘장벽’. 사진 작가 제공
한국화가 정덕현씨 5일까지 개인전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노동이란 어떤 의미일까.

젊은 한국화가 정덕현씨는 종이 화폭에 보풀이 일어나 누더기가 되도록 먹물 묻힌 붓질을 거듭한다. 먹이 번지기 전에 선을 긋고 형상을 만들어내고 깔끔하게 먹바림 하는 기존 한국화법의 상식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행위다. 작가 자신에게 이런 권태스런 붓질은 노동의 의미를 묻고 또 묻는 기약 없는 몸짓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서울 합정동 전시공간 합정지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에는 이런 작업 방식을 통해 시커먼 먹물로 쟁여넣은 여러 사물들의 이미지가 아롱진다. 컴퓨터의 키보드 자판을 잔뜩 그리고 자판마다 모두 ‘?’를 그려넣은 대작 ‘장벽’을 비롯해 작업복, 땔감용 드럼통, 일회용 커피믹스의 껍데기, 신호등 등을 음울한 이미지의 물건들로 담은 소품그림들도 내놓았다. 노동의 가치가 상품으로 격하되고 노동을 둘러싼 소통이 막혀 있는 현실을 암시하는 작업들이다.

정씨는 지난해 팔레드서울의 개인전 ‘시대착오-적’에서 노동의 숨결을 붓질과 형상에 반영한 공장의 풍경이나 기계들을 그린 연작으로 주목받았다. 노동과 착취에 대한 관념적 논의를 벗어나 그리는 행위 자체에 ‘몸을 움직이는’ 노동의 본질을 숨결처럼 투영하는 작업이다. 작가가 쓰는 먹붓과 연필은 재현의 도구라기보다 노동이 철저히 상품이 되고 수단이 되는 시대의 불안감을 표출하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이런 작법들은 ‘방황’ ‘불안정’ ‘혼돈’이란 코드 아래 더욱 증폭되는 느낌을 던져준다. 겨울철 공사현장에서 지피는 드럼통의 장작불을 따뜻한 모닥불의 이미지가 아닌 차갑고 권태스러운 빛 막대처럼 묘사한 ‘집어등’이나 콘크리트 철근덩어리에 ‘…이도 저도 아닌 나의 태도’란 문구를 비석처럼 적어놓고 그린 ‘낙서’ 등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작가의 퀭하고 혼란스런 속내가 엿보인다. 9월5일까지. 010-5314-487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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