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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조각가는 왜 바흐 피아노곡에 도전했나

등록 2015-09-01 21:14수정 2015-09-02 18:46

조각가 이기칠씨가 바흐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치는 작업 영상을 담은 `골트베르크변주곡 연습‘.
조각가 이기칠씨가 바흐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치는 작업 영상을 담은 `골트베르크변주곡 연습‘.
이기칠 신작 ‘골트베르크변주곡 연습’
피아노거장 글렌 굴드(1932~1982)가 ‘끝도, 시작도 없는 음악’이라고 읊조린 바흐의 명작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피아노 선율이 컴컴한 전시장 곳곳을 굴러간다. 박자의 짜임새나 음색의 독특함은 별로 없지만, 느릿한 템포에 한올한올 음의 알갱이를 골라내듯 울리는 선율에서 신중하게 건반을 두드린다는 느낌이 또렷하다. 아니나 다를까, 안쪽 구석에 그랜드피아노를 마주한 채 경건한 자세로 타건에 몰입한 한 남자의 영상이 빛나고 있다.

2년간 연습뒤 연주 영상 만들어
‘작업실’ 연작 등과 한갖춤 이뤄
“예술가의 태도 고민하다 탄생”

영상의 주인공은 중견조각가 이기칠(54·경북대 미술학과 교수)씨다. 13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구 대표 작가 3인전(대구 3부작)에 작가 김호득, 김희선씨와 함께 출품한 이씨는 자신의 연주 장면을 담은 신작 ‘골드베르크변주곡 연습’을 대표작으로 내놓았다. 골드베르크변주곡의 도입부인 아리아와 이어서 등장하는 세 딸림 변주곡의 작업실 연주 장면을 일일이 찍은 것이다. 12개의 테이블 위에 얹은 톱밥덩어리들을 여러 직선 형태로 깎으며 다듬은 근작 ‘공간변형연습’, 10여년간 고심해온 작가 작업실의 모형과 구상을 내놓은 ‘작업실’ 연작들이 이 영상과 한갖춤을 이뤘다.

네모진 톱밥덩어리를 변주하듯 다양한 모양새로 깎아낸 그의 조각 근작인 ‘공간변주연습’.
네모진 톱밥덩어리를 변주하듯 다양한 모양새로 깎아낸 그의 조각 근작인 ‘공간변주연습’.
조각가가 바흐 피아노곡을 연주한다니 무슨 곡절일까. 1742년 나온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음악의 우주적 경지를 구현했다고 칭송받는다. 프로 연주자도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이 명곡은 청아한 첫 곡 아리아와 아리아를 돌림노래풍의 카논 기법으로 변주한 30개의 숱한 딸림곡들을 주마등처럼 거친 뒤 첫 아리아로 돌아와 끝난다. 연주시간만 1시간 넘는 대작을 그는 불과 2년 전부터 연습했다. 대학시절부터 좋아했고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명곡을 직접 연주하는 행위가 예술가로서 삶의 태도에 얽힌 물음을 푸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피아노는 딸아이와 바이엘, 체르니를 함께 배우며 시작했어요. 영국유학에서 돌아와 시작한 작업이 돌에 구멍을 뚫는 ‘작업’이었고 이후 손수 짓는 작업실을 구상하며 ‘작업실’프로젝트를 10여년 해왔는데, 2004년 교수가 된 뒤 제대로 된 작업실이 생기면서 조각가로서의 직분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어요.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성찰하다보니, 실제를 이루기 위한 연습이 중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되더라구요. 엉뚱한 연주 작업은 이런 발상들이 쌓여서 이뤄진 겁니다.”

이씨의 연주는 음악가로서의 작업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이미지 영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하나의 주제나 심상을 다채롭게 발전시키는 바흐 음악의 논리적이고 건축적인 구성은 하나의 기하학적 이미지를 여러갈래로 변형시키는 작가의 사변적인 공간조각들과도 맥락이 닿는다. 작가는 “체르니를 건너뛰고 곧장 변주곡을 연습하겠다고 음악교사에게 부탁해 무식하게 시작한 도전이다. 연주력은 형편없지만, 도전의 에너지가 충만한 연습상태의 희열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골드베르크변주곡의 32곡 가운데 4곡만 선보이지만, ‘연습’을 거듭해 앞으로 10년 안에 32곡 전체를 연주하는 게 그의 목표다. (053)790-3000.

대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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