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조덕현 나란히 신작전
‘여전사’로, ‘역사를 캐는 미술가’로 불렸던 왕년의 두 스타작가가 있다. 뉴욕 모마미술관에 썩어가는 구슬장식 생선을 던져놓고, 몸과 여성성을 ‘사이보그’‘히드라’ 등의 도발적인 설치조형물로 표출했던 작가 이불(51)씨와 근대 한국인들의 개인사를 담은 인물드로잉과 가상의 고대유물들을 발굴하는 역사퍼포먼스를 펼쳤던 조덕현(58·이화여대 교수)씨.
이들이 가을 초입에 나란히 신작전을 차렸다. 두 사람 모두 지난 20여년간 국내외 미술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독특한 자기언어를 구축한 인기작가들이다. 50대를 넘거나 60을 바라보는 고비에서 또다른 자기모색의 과정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새삼 눈길이 간다.
샹들리에 조형물 활용한 이불
비슷한 작업 7~8년째 계속
창의적 현실 인식 찾기 힘들어
서울 삼청로 피케이엠갤러리에서 25일까지 열리는 이씨의 개인전 전시장에는 갖가지 모양의 샹들리에 조형물, 거울을 붙인 모빌조각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천, 전선, 플라스틱, 체인, 싸구려 장식재, 엘이디조명, 거울조각 등을 조합한 뒤 샹들리에 등갓 혹은 등갓 속을 수놓고, 등갓 내부에 무한대로 반복되는 구조의 이미지를 거울의 반사효과로 내비치는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울긋불긋한 소품 일색의 장식적 미감이 먼저 와닿는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거대 전시장을 거울조각들의 황야로 만든 ‘태양의 도시’연작을 화랑과 샹들리에 공간에 맞춰 썰거나 압축시킨 느낌이다.
사실, 최근 그의 작업들은 눈에 띄게 과거의 저항과 힘을 잃는 기색이다. 거울과 엘이디 등 빛 소재를 이용한 작업들이 7~8년째 지속되고, 지난해 거울방이나 안개로 찬 담론의 방들을 내놓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 훨씬 강력한 바깥의 현실적 사건들에 비해 신선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썩은 생선이나 독재자 박정희가 갇힌 빙산 등에서 보여주었던 창의적인 현실 인식은 ‘나의 거대 서사’‘인피니티’ 등으로 이름붙은 근작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사의 모든 단면들을 거울을 통해 총체적으로 성찰한다는 작가의 최근 담론은 더욱 난해하고 무겁고 강박적이다. 거울과 샹들리에로 축약된 이번 근작들 또한 비우고 덜어내는 성찰 대신 물질성만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작업들이어서 작가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더욱 혼돈스럽게 한다.
‘역사의 고고학적 탐색’ 변주 조덕현
이름 같은 무명 영화배우 삶 다뤄
서사 진정성에 의문…인상 공허
일민미술관에서 25일까지 열리는 조덕현씨의 전시 ‘꿈’은 역사의 고고학적 탐색이란 작가의 작업 스타일을 변주한 작업이다. 소문난 이야기꾼인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곡절어린 인생을 살았던 작가와 같은 이름의 무명 영화배우의 삶을 현직 소설가와 협업을 통해 가상으로 꾸미고, 전시에 퇴물이 된 배우가 말년을 보낸 정교한 집 설치물을 등장시킨다.
역시 같은 이름의 실제 배우를 시켜 유명영화의 주인공이고 싶었던 그의 꿈을 연기하게 하고 그런 설정 자체를 정교한 연필드로잉으로 옮겨 큰 그림으로 집 안에 내걸었다. 스토리텔링과 이를 연출한 시각적인 측면의 재미가 쏠쏠하지만, 이런 설정은 다분히 표피적이다.
왜 이런 작업을 해야하는지 서사의 진정성 측면에서 의문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페이크 다큐(가짜 다큐)로 불리는 가상역사 만들기는 본래 정치적 고발이나 현실의 문제를 역으로 드러내려는 장치다. 근작전은 이와 달리, 민족수난기 한국인의 한 개인사를 작품 전략의 기능적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상의 고대나라를 설정하고 유물을 조작해 파묻어 놓고 발굴하는 이전 작가의 작업 얼개와 기본적 맥락이 거의 같고, 가상 인물을 실제 역사적 현장에 끼워넣는 구도도 기존의 여러 영화나 비디오아트에서 시도해온 것들이란 점에서 전시는 공허한 인상으로 남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비슷한 작업 7~8년째 계속
창의적 현실 인식 찾기 힘들어
온갖 일상적 재료로 현란한 샹들리에풍 조형물들을 선보인 작가 이불의 신작 전시장. 사진 노형석 기자
이름 같은 무명 영화배우 삶 다뤄
서사 진정성에 의문…인상 공허
조덕현씨의 근작 ‘올드 상하이-김염과 조덕현’. 근대 가상인물인 배우 조덕현이 선망했던 1930~40년대 중국 영화계의 조선인 스타 김염의 초상과 실제 배우 조덕현씨가 연기한 가상배우 조덕현의 초상을 나란히 연필 드로잉으로 그렸다.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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