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여전히 안무다: 생산>
국립현대무용단 <여전히 안무다: 생산>
하나의 공연 아래 일곱 안무가 나열된다. 그 중 어떤 것들은 다른 안무들의 전후로 출몰하며 스스로 분열되기도 한다. 기껏해야 1/7에 불과한 온전하지 못한 것들의 어우러짐과 삐긋거림. 지난 11~13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진 국립현대무용단의 연간 프로그램 <여전히 안무다>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 모두에서 ‘실험’이란 단어가 적용될 현장이었다.
언뜻 두드러지는 실험 재료는 서사적 발화의 도입이다. 최은진은 춤과 관람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 더듬어가는 언술은 참여 관객들이 무대 위 색색의 선들 위를 더듬듯 이동해나가는 행위로 변주된다. 윤자영은 배꼽과 배설의 함수관계를 통해 개체와 보편을 뒤집는다. 이 때 벽에 영사된 텍스트가 퍼포머의 동작과 불일치하며 이 역전을 되묻는다.
이러한 흐름상에서, 발화 행위가 배제된 임진호와 곽고은은 이질적으로 돌출되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무대에 아쉬움이 있다면 이는 텍스트의 부재 탓은 아님을 언급해야겠다. 마찬가지로, 텍스트성이 그 자체로 혁신을 가져오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해두자. 가령, 몸짓과 언어의 모호한 관계를 탐구하려는 장홍석의 시도는 아쉽게도 막연한 탐색 수준에 그쳤다. 권령은의 경우에서도, 전반부의 장황한 설명을 상쇄하는 것은, 후반부 물구나무 선 신체와 그 그림자를 구획짓는 흰 종이의 침묵이었다.
결국, 이 공연의 핵심은 안무에 대한 질문을 생산하는 각자의 방식일 것이다. 즉, 올해 안무랩의 키워드로 설정된 ‘생산’은 안무 자체나 서사의 생성이라기 보다는, 안무와 관련된 의혹들의 증폭에 가깝다. 현재 안무 전반의 유효성에 대한 질문. 여전히 안무의 실험은 가능한가. 그 실험의 양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요컨대 안무는 어디로 향하는가.
그 방향에는 미리 답이 상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좁은 로비로부터 시작되어 공연장 내부를 샅샅이 훑으며 진행되다 종국엔 극장 바깥에서 마감된 이 일련의 공연은 공간의 탐색을 넘어 안무의 행방과 그 경로(불가)를 추적한다. 다분히 거친 조합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실의 지속에 기대를 품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심부에서 안정된 레퍼토리를 구축함과 동시에 주변부에 무모한 일탈을 촉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국립현대무용단의 비전일테니.
방혜진/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 <여전히 안무다: 생산>
국립현대무용단 <여전히 안무다: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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