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배병우, 빛으로 그린 ‘프랑스판 수묵화’

등록 2015-09-29 20:45수정 2015-10-05 23:51

25일 샹보르 성을 배경으로 찍은 신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배병우씨. 2년간 샹보르 성 부근의 숲속을 누비며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이젠 숲의 나무도, 동물도 한동네 사람들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25일 샹보르 성을 배경으로 찍은 신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배병우씨. 2년간 샹보르 성 부근의 숲속을 누비며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이젠 숲의 나무도, 동물도 한동네 사람들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프랑스 고성에서 사진전 ‘숲속으로’
신라의 숲과 르네상스의 숲이 만났다. 16세기초 프랑수아 1세가 착공해 130여년 만에 루이 14세가 완공한 프랑스 중서부의 샹보르 성에 무대가 깔렸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성 본채 중심부의 나선형 이중계단 둘레의 벽에 경주 남산 소나무들과 샹보르 성 외곽의 삼림을 찍은 사진들이 나란히 내걸렸다.

‘프랑스내 한국의 해’ 행사 일환
프 대표 세계문화유산 샹보르성
2년여간 10차례 오가며 촬영뒤
경주 소나무 숲 사진과 함께 걸어
“경주나 샹보르나 나무는 다 똑같아”
현지 기자 “작가 개성-공간 잘 조응”

다빈치의 나선형 계단은 신비스럽다.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오는 계단이 꼬인 사슬처럼 겹쳐져 올라가는 이와 내려오는 이는 서로를 전혀 볼 수 없다. 관객들은 엇갈린 역사와 시대의 은유처럼 비치는 이 계단을 전망대 삼아 사방에 내걸린 숲 사진들을 내려다본다. 신라 고도 경주의 왕릉 주위로 구불구불 굽이쳐 올라가는 소나무들과 오크나무, 자작나무 같은 다양한 수종의 고목들과 가녀린 풀들이 해자, 연못과 함께 어우러진 샹보르 정경들이 마치 고성의 일부분처럼 들어온다. 어디가 경주이고 샹보르인지를 도통 구분할 수 없는, 이 아련한 침묵의 풍경들이 수묵화처럼 스며들어온다.

중견사진가 배병우(65)씨가 국립샹보르재단과 손잡고 2년여 작업 끝에 만든 개인전 ‘숲속으로(D’une foret l’autre)’의 풍경은 시종 은근하고 은은하다. 26일 개막해 내년 4월10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내년 한불 수교 130돌을 앞두고 차려진 ‘프랑스내 한국의 해’ 전시 행사 가운데 단연 고갱이다. 샹보르 성은 중세 성채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건축미가 결합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성으로 꼽힌다. 프랑스 쪽 제안으로 2년여 전부터 성을 10차례 오가며 촬영해온 배씨는 그만의 서정적 시선으로 포착한 성 곳곳의 숲과 나무를, 천 년 신라의 정기가 어린 경주 소나무 숲의 사진과 함께 내놓았다. 40여년 이상 흑백필름만 고집하며 스트레이트한 풍경을 찍어온 그는 1980년대 초 시작한 소나무 작업이 국외 저명 컬렉터에게 각광을 받으면서 스타가 됐지만 시류에 휘둘리지않고, 종묘, 창덕궁 등 궁궐부터 남해바다, 오름까지 인간, 인공과 공존해온 자연의 모습을 좇아왔다. 작가는 “샹보르 성 전시도 내가 ‘영업’해온 맥락대로 간 것”이라고 했다.

“여명이 비치는 새벽이나 해질 무렵 샹보르의 풍경을 담았어요. 맘에 드는 연못가나 왕의 사냥터 깊숙한 곳에 들어가 낮에는 도시락 까먹고 자면서 틈틈히 ‘영업’했지요. 경주나 샹보르나 모든 나무들이 나이들고 늙으면 다 똑같아요. 빛으로 수묵화를 그리고 시를 쓰는 게 제 작업이고, 그런 관점, 시선이 제일 중요하기에 장소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죠.”

100여평 면적에 십자형으로 뻗은 네개의 홀 전시는 섬세하다. 작품 배치에만 6달간 고심했다는 재단 큐레이터 야닉 메르코이롤은 고목과 연못, 풀 등이 얽힌 배씨의 작업마다 각기 달리 강약을 주었다. 구불구불 뻗쳐가는 경주의 소나무들을 엮은 병풍 스타일 대작과 샹보르 성 해자 앞에 꼬챙이처럼 솟은 숲나무의 획 같은 사진들은 한쪽 홀에 몰고, 다른 쪽에는 수면 위에 가지나 풀이 아롱거리는 잔잔한 작품이나 가지와 잎의 촘촘한 느낌 등이 부각되도록 배치했다. 홀 옆에 딸린 ‘어둠의 방’에서 틀어준 샹보르 숲 동영상은 작가의 사진들을 기반으로, 새소리, 물소리까지 들려주면서 그의 작품 속을 거니는 듯한 착시감을 안겼다. 영상 좌우엔 위에서 미세한 부분을 비추는 핀 조명으로 자체 발광하는듯한 경주 남산 소나무 연작들을 배치했다. 울렁거리는 물 안개 위에 바늘처럼 잎자락을 뻗친 풀의 모습이나 여백을 인 자작나무 등걸의 자잘한 질감, 20세기초 풍경사진처럼 빛바랜 오크나무 숲의 정경 등은 갈라진 껍질 드러내며 하늘로 뻗거나 엉켜드는 경주의 풍경과 서로 편안하게 스며들었다. 큐레이터 야닉은 “대자연의 숭고미를 그린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를 연상시킨다. 동양적 화면을 빚으면서도 서구인의 정서를 울리는 보편적 미감이 장점”이라고 평했다. <르 피가로>지 기자 발레리 주퐁셀은 “샹보르 성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 작품이 묻혀버리기 십상인데, 작가의 개성적 세계와 공간이 절묘하게 잘 조응한 전시가 나와 놀랐다”고도 했다.

샹보르 성/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