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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그리워서 부르고, 애달파서 또 부르고…‘사할린 아리랑 70년’

등록 2015-10-04 20:01수정 2015-10-05 15:07

지난 3일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심의 한인문화센터에서 학생들이 소고춤을 추고 있다.
지난 3일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심의 한인문화센터에서 학생들이 소고춤을 추고 있다.
일흔아홉 이복순 할머니는 한 갑자는 뺀 열아홉 목소리다. 곱디 고와서 슬프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정채련(84), 임정자(80), 김춘경(76), 이재화(76), 마태순(75), 김정희(74), 고행자(69) 할머니도 속으로 따라 불렀다. 할머니들은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있는 무궁화합창단원이다. 토요일마다 2시간씩 연습해, 시 창립일, 어버이날, 명절 때마다 솜씨를 뽐낸다. 8명 중 7명이 ‘사할린 한인 1세’다. 1945년 8월15일 이전부터 살던 이들이다. 일제의 강제징용 등으로 패전 전 일본 땅이던 남사할린으로 끌려온 이들과 그 자녀다. 망향의 한을 품은 채 70년이 흘렀다. ‘강제징용과 이산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고국행을 꿈꾸지만 1세만 받겠다는 한국의 입장은 그대로다. 그 와중에도 한인 1~2세들은 주로 민요와 대중가요를 즐긴다. 민족교육이 폐지된 뒤 3~4세들은 우리말과 춤과 노래를 한인문화센터에서 배워야 했다. 하지만 뜻밖에 전통문화에 관심을 둔 4세들이 많았다. 문제는 전통예술을 배워도 한인 극장·극단이 없어 무대에 설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고민거리다. 4세 중 10대들은 사물놀이 장단에 열중하면서도 ‘엑소’나 아이유 등 케이(K)팝에 열광한다. 광복 70년, 이산 70년을 맞아 사할린 한인 1~4세들의 삶과 그들 속의 우리 노래와 춤을 들여다봤다. 1~2세는 대부분 직접 인터뷰했고 3~4세대는 통역을 거쳐 물었다.

한인 1세 김춘경(76)씨
한인 1세 김춘경(76)씨
“민족학교 없어져 한때 침체 한국교육원 생겨 다시 활기”

무궁화합창단을 지휘하는 김춘경 할머니는 1944년 아버지를 따라 일본 북해도에서 사할린으로 들어왔다. 사범학교를 나온 공산당원 출신으로 사할린주 당 기관지인 <레닌의 길로>(새고려신문의 전신) 간부를 지냈다. 옛 소련 정부가 세운 조선소학교에서 우리말과 애국가, 아리랑을 배웠다. 하지만 1960년대 초 민족교육의 구심점이던 마지막 남은 조선중학교가 문을 닫았다.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흐루쇼프 서기장이 ‘러시아어 단일교육’을 내세우며 민족학교를 폐교시킨 점. 다른 하나는 ‘러시아어를 외국어처럼 배우지 말고 아예 직접 배우자’는 학부모들의 요청이었다. “민족음악을 하는 악단과 극장도 없어지고 1960년대 말엔 학교도 없어졌어요.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는 ‘사할린 한인문화의 침체기’였어요.” 하지만 김 할머니는 “1993년 사할린한국교육원이 생긴 뒤 전통춤과 노래도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할머니는 한인문화센터에서 유아교실과 할머니교실 강사를 맡고 있다.


한인 2세 박영자(64)씨
한인 2세 박영자(64)씨
“아버지가 꼭 돌아가라 했는데 한국은 2세 영주귀국 왜 막죠”

한인 2세 박영자(64)씨의 아버지는 전남 신안군 하의도 출신이다. “우리 아버지가 ‘너는 꼭 조국에 돌아가 살아야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러시아인은 ‘일본인, 유대인, 독일인들은 5세건 6세건 자기네 뿌리만 있으면 다 데리고 가는데, 한국은 왜 1세와 2세를 갈라 놓는가, 왜 영주귀국 못하게 하는가’라고 제게 물어요. 한국 정부는 1세 본인의 영주귀국만 받아요. 2~3세와 떨어지기 힘들어 귀국하지 않는 1세대가 다수입니다.”

박씨는 여섯살 때 북한 영화 <심청>에서 물속에서 울리는 가야금 소리를 듣고 단박에 반했다. 그런 음악을 듣고 자랐지만 민족학교가 폐교되면서 우리 전통춤이나 음악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2004년 한국에서 온 스님이 추는 입춤을 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꼭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2007년 한인문화센터가 문을 열자,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한테 입춤, 부채춤, 아리랑 춤과 장고, 가야금, 25현 가야금, 진도아리랑을 배웠다. 내친김에 올해 2월 ‘아리랑 전통무용팀’을 꾸리고 8분짜리 ‘아리랑춤’을 안무했다.


한인 3세 김옙게니아(42)씨
한인 3세 김옙게니아(42)씨
“학교서 한국예술 가르치지만 설 무대 없어…한국극장 필요”

한인 3세 김옙게니아(42)씨는 에트노스 예술학교에서 전통무용을 가르친다. 8~15살 8년 과정의 이 학교엔 러시아민속과와 한민족문화예술과가 있다. 일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3~5번 이곳에서 전통예술을 배운다. 한민족문화예술과는 올해로 20돌을 맞았다. 지난해엔 소치 겨울올림픽 문화행사에 초청받아 한국음악을 연주했다. 전통춤은 북한의 영향이 강하다. 월북한 최승희가 가르친 쟁강춤과 아박춤, 부채춤, 경고(가벼운 장고)춤 등을 배운다. 사물놀이, 가야금, 단소 등 기악과 민요 중심에서 올해부터 케이팝까지 확장한 성악 부분도 있다. 이 학교는 사할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생명줄’이다. 김 교사는 아홉살 때부터 춤을 배웠다. 춤을 보지 못한 채 한국 노래만 듣고 춤을 추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는 뼈 있는 말을 했다. “우리말을 하는 나라에 가서 출연도 하고 전문가의 춤을 더 보고 싶어요. 그런데 에트노스 예술학교에서 유감스러운 점은 공부를 마치면 설 무대가 없다는 거예요. 이들이 설 한국 극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왼쪽부터 한인 4세들 송알리크(24)씨, 김알리나(16)양.
왼쪽부터 한인 4세들 송알리크(24)씨, 김알리나(16)양.
“한국에서 사물놀이 더 배우고파”“장고도 좋지만 K팝, 헨리 좋아해”

한인 4세 송알리크(24·송천석)는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파견한 목진호 선생한테서 사물놀이를 배웠다. 신인가(24) 등과 ‘하늘 사물놀이팀’을 만들었지만 목 선생이 떠난 뒤에는 해체됐다. 알리크도 3~4년 동안은 사물을 손에서 놓았다. 2012년 말 다시 복원한 ‘하늘 사물놀이팀’은 전문 연주팀 3명(신인가, 박이라, 송알리크)과 11~15살 어린이·청소년팀 14명으로 이뤄졌다. 알리크는 한국에 대한 입장이 매우 뚜렷하다. “러시아에서 살면서 사물놀이도 여기서 발전시키고, 한국에서는 배우고 쉬고 싶어요.” 한인 4세 김알리나(16)는 ‘하늘 팀’에서 장고를 배운 지 1년 가깝다. 장고만큼 좋아하는 건 케이팝이다. 아이유, 에일리, 헨리, 비스트, 투피엠을 좋아한다. “헨리의 ‘트랩’을 좋아하는데요. 목소리가 너무 좋거든요.” ‘하늘 팀’의 여학생들은 대부분 ‘엑소’를 좋아한다. 하지만 남학생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유즈노사할린스크/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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