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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미술과 건축은 지금 ‘애정 과시중’

등록 2015-10-05 20:49

종이판재를 격자형뼈대로 엮어 계곡의 바위 모양으로 만들어낸 조호건축의 와플밸리.
종이판재를 격자형뼈대로 엮어 계곡의 바위 모양으로 만들어낸 조호건축의 와플밸리.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전

원래 한 몸이었던 사이다. 미술과 건축은 지금도 서로 끈끈하다. 두 장르 모두 공간이나 사물에 개념과 의미를 불어넣어 작품을 만든다. 특히 1990년대 이래 현대 미술판에서 작가가 창안한 개념을 일정 공간에 구조물로 형상화하는 설치작품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미술과 건축은 다시 가까와지고 있다.

30~40대 젊은 건축가 6팀
국내 첫 건축재료 설치작품전
미술과 상호 수렴하려는 의지 보여
골판지 등으로 만든 구조물 ‘참신’

미술가가 직관과 상상력에 기댄다면, 건축가는 얼개의 기능과 지속성에 대한 계산을 중시해왔다. 하지만 요사이엔 건축에서도 작가적 상상력이 부각되며 미술은 세밀한 사전공정이 성패를 좌우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사실 현대 건축물 자체가 일상의 감각으로 공간을 주물러 만든, 지속성과 기능성을 겸비한 설치작품과 다름 없다. 90년대 이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건축제에 선보이는 대가들의 작업이 개념미술, 설치 작업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 것도 이런 흐름을 대변한다.

서울 소격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웃 오브 더 박스: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전은 미술과 상호 수렴하려는 현대건축의 의지를 드러내는 국내 초유의 건축재료 설치작품 전이다. 대형건축회사들의 독주 속에 분투해온 30~40대 건축가 6팀이 대나무, 플라스틱, 골판지 등의 낯선 재료로 미술가들의 설치작품을 방불케하는 미니 구조물을 차려놓았다. 여전히 설계도면이나 모형 전시 나열에 치중하는 국내 여느 건축전시들과는 전혀 다른 틀거지여서 젊은 작가들의 답답증과 고민이 단번에 느껴진다.

프로젝트팀 문지방의 ‘템플플레이크’. 지붕재로 쓰이는 골함석 스타일의 플라스틱을 이용해 빛이 투과되는 성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을 구현했다.
프로젝트팀 문지방의 ‘템플플레이크’. 지붕재로 쓰이는 골함석 스타일의 플라스틱을 이용해 빛이 투과되는 성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을 구현했다.
와이즈 건축의 장영철, 전숙희 작가는 1층 들머리 전시장에 담양산 대나무를 천에 휘어붙여 원뿔 갓을 씌운 정자 같은 파빌리온을 들여놓았다. 시원한 느낌에 특유의 청량한 냄새가 감도는 이 대나무 파빌리온은 전시장 뒤를 둥그렇게 막고 전면을 트이게 한 얼개 덕에 관객의 시선을 판에 박힌 전시장 내부가 아니라 미술관 창문 바깥의 경복궁 담장으로 향하도록 만든다.

김찬중 작가의 사무소 ‘더시스템랩’은 구멍 뚫은 규칙적인 단위의 금속판 조각들을 재치있게 조합해 청명한 숲 이미지를 상징하는 이글루를 지었고, 조호건축의 이정훈 소장은 벌집 같은 종이구조물을 단단하게 맞붙여 밟는 쾌감을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인공계곡과 바위의 지형을 만들었다. 프로젝트팀 문지방(권경민·박천강·최장원)은 ‘템플 플레이크’라는 제목 아래 농장축사의 지붕재로 쓰는 골함석과 같은 모양으로 가공한 투명 플라스틱을 통해 빛이 투과되면서 사원 같은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환상적 공간을 꾸몄다. 네임리스건축(나은중·유소래 소장)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는 무거워 보이지만 가벼운 검회색 전벽돌과 가벼울 것 같지만 무거운 투명 유리벽돌을 서로 맞붙인 벽 작업을 내놓아 역설의 묘미를 즐기게 한다. 건축사사무소 53427의 고기웅 소장은 3디(D)프린터로 뽑아내 조인트 접합 부위에 튜브 곡선을 연결시켜 허공을 부유하는 자유로운 곡선 구조물을 만들어 공학적 상상력의 미학을 과시한다.

출품작들은 밟거나 만지지 못하는 미술가들의 설치작업과 달리 누구든 들어가 거닐 수 있다. 손으로 질감을 느껴보고 콘크리트 구조물과는 다른 재료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공감각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건축이 또다른 감각의 덩어리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한 작품들은 “건축가가 이뤄야할 모든 것은 명암이 머무는 장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19세기 문예비평가 존 러스킨의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상 건축재료로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이 설치작품전은 작가들이 좇는 이상적 건축세계의 밑그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다른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의미심장한 작업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2월13일까지. (02)720-5114.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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