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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불이 나가자, 어둠 속에서 피아노는 계속 울렸다

등록 2015-10-06 19:12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노부스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가운데), 김재영이 지난 3일 사할린주미술관에서 사라사테 작곡의 ‘치고이너바이젠’을 연주하고 있다. 러시아 관객과 한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노부스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가운데), 김재영이 지난 3일 사할린주미술관에서 사라사테 작곡의 ‘치고이너바이젠’을 연주하고 있다. 러시아 관객과 한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사할린 한러 우호축제 열려


어둠 속에서 피아노가 울렸다. 어둠 속에서 바이올린이 눈을 떴다. 암흑 속의 ‘심안(心眼) 연주’는 객석의 ‘심금’을 울렸다.

러시아 사할린에 몰아친 태풍 때문에 공연장은 수시로 정전됐다. 지름 50㎝의 자작나무는 허리가 부러졌다. 학교는 휴교했고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지난 2일 태풍의 와중에 사할린 주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심 체호프센터에서 한-러 우호축제 개막 특별공연이 열렸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유즈노사할린스크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막바지로 치닫는 순간, 공연장은 갑자기 암흑천지로 변했다. 오케스트라의 일부 파트는 연주를 멈췄다. 하지만 어둠 속의 피아노는 한 줄기 빛처럼 선율을 계속 울렸다. 연주가 끝나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노부스콰르텟의 바이올린 주자 김재영과 김영욱의 연주 때도 정전이 있었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잊지 못할 음악회로 기억할 ‘사할린 정전 공연’이다.

개막 특별공연 태풍으로 정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연주 이어가
사할린 관객들 심금 울려
미술전시·문학의 밤 행사도

‘제2회 사할린 한-러 상호이해 및 우호축제’는 한국의 광복 70주년과 러시아의 전승 70주년을 기념해 2~6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열렸다. 클래식과 전통예술 공연, 미술 전시, 문학의 밤, 한국영화 상영 등 문화행사와 전남 보성군이 주최한 한국차 전시와 시음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김재영, 김영욱, 선우예권의 연주는 3일 주미술관, 5일 네벨스크시 문화센터 공연으로 이어졌다. 일본 점령시절 옛 척식은행 건물을 그대로 쓰는 주미술관 연주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처럼 한 곡 한 곡이 프롬나드(간주곡)와 같이 지나쳐 갔다. 100여 명의 관객은 연주자의 들숨과 날숨을 함께 호흡하며, 활 실의 섬세한 떨림까지 대뇌피질 속에 깊숙이 각인시켰다. 피아노 선율은 미술관의 2층 계단처럼 조금씩 음계를 밟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6월의 뱃노래’는 사할린 한인들의 망향가처럼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박수가 쏟아졌다. 주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올가는 “최고”라며 이들 품에 꽃다발을 안겼다. 이혜식 새고려신문 사진기자는 “정말 잘하네요”라고 찡긋 웃었다.

기악도 좋았지만 사할린 한인들에겐 성악이 더 살갑게 다가갔다. 소프라노 박재연은 풍부한 성량으로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라고 열창했다. 베이스 이연성은 러시아 민요 ‘다로고이 들린노유’(머나먼 길)을 불러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메리 홉킨스가 1968년 ‘도즈 워 더 데이즈’로 번안해 불러 우리에게도 친숙한 곡이다.

선미숙은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봉사 눈뜨는 대목’으로 박수를 받았다. 한국전통예술중학교 공연단은 부채춤, 경고춤, 풍물을 선보였다. 전통예술중 공연단은 3일 사할린한인문화센터 공연장에서 사할린의 에트노스 예술학교 학생들과 합동공연도 벌였다. 빠른 템포의 북한풍 음악이 흐르자 에트노스예술학교 한민족문화예술과 학생들이 손잡이 없는 소고를 들고 흥겨운 춤사위를 펼쳤다. 김옙게니아 교사가 지도하는 모란봉팀 9명은 소고춤을 뽐냈다.

5일 밤엔 사할린주립도서관에서 한-러 우호 문학의 밤이 열렸다. <사평역에서>로 유명한 곽재구 시인은 이날 <우즈또베의 민들레>라는 시를 직접 낭송했다. “1초의 섬광 속에 영원의 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처음 깨달았다/ 한 노인이 다가와 가만히 내 등을 끌어안았다/ 주름살 깊은 그의 볼이 내볼을 스치는 동안/ 민들레 꽃냄새가 났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조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낸 작품이다.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는 김병학 시인과 동포 문학인 양세르게이 시인의 시낭송도 있었다. 러시아 쪽에서도 문학인을 소개하고 시를 낭송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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