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직관을 따라 몸의 갈망을 빚다

3D 프린터로 만든 이수경씨의 근작 ‘모두 잠든:피에타’

이수경 개인전 ‘믿음의 번식’

개념 짜기보다 몸 가는 대로
피에타상·서왕모 등 만들어
전생체험 화폭에 옮기기도

작가가 즐거운 혼수상태에 빠진 것일까. 지하 전시장에 내려오자마자 기타줄 뚱뚱 뜯는 소리가 영화 <패왕별희>에 나올법한 중국 경극 배우의 간지러운 육성과 얽히며 귀를 자극한다. 구석 받침대엔 쿨쿨 잠자는 바리데기, 서왕모, 피에타 상들이 새끈한 자태로 널브러졌다.

벽면에는 국내외 사찰의 요란한 축제 장면들을 담은 영상이 왔다갔다를 되풀이한다. 발가벗은 도인이 수정구슬 위에 앉아 관조하는 그림도 보인다.

요사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이런 뒤죽박죽 전시장을 벌여놓은 이수경(52)씨는 미술판에 소문난 4차원 작가다. 그는 언제나 카오스(혼돈) 상태로 일한다. 수년간 어떤 작업을 할지, 어떻게 개념을 짜고 작품을 만들어낼지 등등의 구상과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몸과 손이 가고 싶은대로 따라가 마음과 맞아떨어지는 지점, 자신도 구체적으로 뭔지 잘 모르는 지점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드로잉을 긋고 형상을 만들어낸다.

‘믿음의 번식’이란 제목을 단 이 전시는 기발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 세상 곳곳으로 몸부터 내던지는 작가의 좌충우돌 에너지를 드러낸다.

수년간 심리상담사의 최면 상담을 자청해 체험했다는 전생의 제 모습을 작가는 정교한 붓질로 옮겼다. 숲속에서 짐승 뼈무덤을 배경으로 구슬 타고 앉은 수행자 그림이다. 해남 대흥사, 일본 니가타 신사, 대만 지방사찰 등의 축제 행렬에 슬쩍 섞여들어가 가운 입고 신나게 춤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틀어주기도 한다.

곤하게 잠든 피에타와 바리데기 등의 백옥 같은 조형물(3D 프린터로 뽑아낸 것이다)들은 전시 준비로 밤을 새면서 제발 편하게 자보고 싶다는 몸의 갈망을 정성스럽게 옮겨낸 것이라 한다. 올 여름 해남 백련사에서 작업할 당시 영감을 받아 만든 금박 입힌 돌덩이(‘그곳에 있었다’)에는 모든 물질에 성스러움이 다 있다는 깨달음을 담았다.

이 작가는 2000년대 이후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접붙여 재생시키는 치유적 작업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국 미술판에서도 어느새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개념과 계산으로 작업하는 요즘 작가들 풍토를 치받는 몸 위주의 자기 위안적 작업은 울림이 적지않았다. 의도가 아니라 몸의 직관과 흥취에 따라, 그리고 뭉치고 빚어내는 그의 작업들은 영성, 힐링, 페미니즘 등의 다양한 해석을 끌어낸다. 자기 치유, 위안의 성격이 강한 만큼 관객들 호응도 좋다.

국내에서 50대 여성미술가는 설 자리가 좁지만, 그는 몸에 충실히 작업을 맡긴 덕분에 하고싶은 것 다하면서 매년 전시를 거듭하는 인기작가로 자리잡았다. “오직 나만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 몸과 정신이 함께 가야한다는 욕망이 작업을 움직여왔다”는 작가는 올여름 남도 사찰에서의 작업을 통해 작품을 확 바꿀 에너지와 소재를 얻게됐다고 기대감에 들떠있다.

그는 이달 말 아랍에미리트 샤르자의 마라야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한국작가전에 터키작가 그림을 손수 베낀 신작들을 깜짝출품한다. 12월20일까지. [phone].

글·사진 노형석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