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리뷰] 연극 태풍기담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기미가요’가 비장하게 흘렀다. 하지만 곡은 곧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바뀌었다. 무대 위에 쓰러졌던 일본 귀족과 군인은 다시 일장기를 들고 무대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가자’는 일본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이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뀐 일본도 떠올랐다.
아시아 근대화를 그린 연극 <태풍기담>의 한 장면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의 <템페스트>를 1920년대 남중국해 외딴섬으로 옮겼다. 원작의 프로스페로는 나라를 잃고 섬으로 옮겨와 지배자가 된 조선 황제 이태황(정동환 분)으로 바뀌었다. 나라를 되찾고 복수를 꿈꾸는 그는 일본의 사이다이지 카네야스 공작(오다 유타카 분) 일행의 배를 난파시킨다.
연극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좀 더 중층적으로 그려냈다. 우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다. 이어 또 한국을 대표하는 이태황이 외딴섬의 원주민을 지배한다. 일본-한국-아시아 원주민이라는 지배-피지배의 사슬은 연극의 뼈대다. 이태황(한국)은 일본을 꺾을 방법을 꿈꾸고, 원주민 얀꿀리는 이태황을 무너뜨릴 비책을 꿈꾼다. 연극은 이들 간의 치열한 갈등을 드러낸다. 우여곡절 끝에, 이태황은 권력을 잃고 얀꿀리와 이태황의 딸은 아이를 낳는다. 비록 작은 섬이지만 지배와 피지배가 사라진 아시아의 평화를 보여준다.
한-일 4개단체 합작해 제작
지배-피지배 없는 이상사회 그려
연출한 다다 “한국 국정교과서,
학생들 사고력 발전 저해할 것” 이 연극은 한-일 4개 단체가 합작해 만들었다. 성기웅 작가(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와 타다 준노스케 연출(극단 도쿄데쓰락 대표)은 한국과 일본의 불행한 역사를 딛고 새로운 시선으로 아시아를 바라본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반성하지 않은 일본은 내버려둔 채 ‘정말 아시아 평화란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다 연출은 얼어붙은 한-일 관계 속에서도‘이상적인 사회’를 꿈꾼다. 연극이 끝난 뒤 따로 만난 그는 ‘국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나는 최근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한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한-일의 정치관계가 상당히 나쁘지만, 이런 (지배와 피지배가 사라지는 내용의) 작품을 만든 점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의 설명은 역사 교과서로 이어졌다. “일본 교과서는 일본인들이 일본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쟁점은 일본을 어떤 식으로 좋아하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일본인은 과거 절대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라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교육할 것인지, 나쁜 짓을 했지만 지금 굉장히 반성하고 있다고 교육을 할지 문제다. 나는 후자로 가야한다고 본다.” 내친김에 한국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물었다. “천편일률적인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면 학생들의 사고력 발전을 저해한다.” 연극을 풍요하게 하는 요소는 두 명의 ‘운기’다. 한국의 조아라는 노래로, 일본의 이토 가오리는 춤으로 태풍 등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운기(雲氣)의 뜻은 ‘기상에 따라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연출이 두 장의 ‘조커’인 운기를 통해 연극을 조율해냈다. 태풍을 나타내는 조명과 안개 효과도 빼어났다. 하지만 한국어-일본어-제3국어가 번갈아 등장하는 대사는 이해하기 쉽잖았다. 일부 관객은 내용이 어렵다는 반응도 내놨다. 한국 공연에 이어 11월 말과 12월 일본 공연이 이어진다. 11월 8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손준현 기자dust@hani.co.kr
지배-피지배 없는 이상사회 그려
연출한 다다 “한국 국정교과서,
학생들 사고력 발전 저해할 것” 이 연극은 한-일 4개 단체가 합작해 만들었다. 성기웅 작가(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와 타다 준노스케 연출(극단 도쿄데쓰락 대표)은 한국과 일본의 불행한 역사를 딛고 새로운 시선으로 아시아를 바라본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반성하지 않은 일본은 내버려둔 채 ‘정말 아시아 평화란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다 연출은 얼어붙은 한-일 관계 속에서도‘이상적인 사회’를 꿈꾼다. 연극이 끝난 뒤 따로 만난 그는 ‘국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나는 최근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한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한-일의 정치관계가 상당히 나쁘지만, 이런 (지배와 피지배가 사라지는 내용의) 작품을 만든 점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의 설명은 역사 교과서로 이어졌다. “일본 교과서는 일본인들이 일본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쟁점은 일본을 어떤 식으로 좋아하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일본인은 과거 절대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라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교육할 것인지, 나쁜 짓을 했지만 지금 굉장히 반성하고 있다고 교육을 할지 문제다. 나는 후자로 가야한다고 본다.” 내친김에 한국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물었다. “천편일률적인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면 학생들의 사고력 발전을 저해한다.” 연극을 풍요하게 하는 요소는 두 명의 ‘운기’다. 한국의 조아라는 노래로, 일본의 이토 가오리는 춤으로 태풍 등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운기(雲氣)의 뜻은 ‘기상에 따라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연출이 두 장의 ‘조커’인 운기를 통해 연극을 조율해냈다. 태풍을 나타내는 조명과 안개 효과도 빼어났다. 하지만 한국어-일본어-제3국어가 번갈아 등장하는 대사는 이해하기 쉽잖았다. 일부 관객은 내용이 어렵다는 반응도 내놨다. 한국 공연에 이어 11월 말과 12월 일본 공연이 이어진다. 11월 8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손준현 기자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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