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문화가치’를 주제로 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2관 전시장.
리뷰 l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통상 2년 준비’ 불구 4달만에 완성
상당수 전시들 현장판매 가능해
그마저 일관된 주제 없이 ‘뒤죽박죽’
‘통상 2년 준비’ 불구 4달만에 완성
상당수 전시들 현장판매 가능해
그마저 일관된 주제 없이 ‘뒤죽박죽’
왜 비엔날레 간판을 달고 있을까?
지난달 15일 광주시 중외공원 전시관에서 35개 나라 3900여명의 작가가 출품한 가운데 개막한 2015광주디자인비엔날레(13일까지)는 벼락치기, 뒤죽박죽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행사다. 아무리 봐도 비엔날레가 아니고 제품 박람회다. 전체 주제가 ‘신명(晨明)’이다. ‘동틀 무렵’, ‘흥겨운 신과 멋’이란 의미에 더해 디자인으로 새로워지는 희망을 담았다고 주최 쪽은 설명했지만, 전시 현장에 이런 일관된 주제가 거의 없다는 것을 1~5관을 돌아보면 알게 된다. 국내외 거장 디자이너와 광주 업체와의 협업들을 진열한 ‘광주브랜딩’으로 시작하는 1관부터 마지막 5관의 디자인실험 마당 ’디자인 아르(R)&디(D)’전까지 10여개 전시들은 주제와 의미, 전시방식, 동선 등이 제각각이어서 디자인 풍물거리를 거니는 기분이다. 공통된 코드는 상당수 전시들이 현장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비엔날레는 특유의 기획을 찾기 어렵다. 전시장의 3분의 1 이상이 기존 외부 전시들을 들여왔다. 2관에서 담양 소쇄원의 정적인 공간을 모델로 새 공간을 꾸리고 현대 청자작품을 진열한 국제홍보상징관은 7~8월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 전시를 통째로 옮겨온 것이다. 일상용품 컬렉션을 다룬 3관의 미국 뉴욕현대미술관(모마) 특별전 ‘험블 마스터피스’ 전과 4관의 세계 순회판매전 ‘뉴 이탈리안 디자인 2.0’도 모두 직수입 전시들이다.
최경란 전시총감독(국민대 교수)이 개념적으로 집중한 전시는 들머리의 ‘광주브랜딩’전과 2관의 ‘아시아 디자인허브’전이다. ‘광주브랜딩’전은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마르코 페레리, 한경하씨 등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 9명을 광주의 기업체들과 짝지워 가구, 조명, 주방, 식기류 등의 디자이너 구상을 실현시킨 고급 제품들로 채웠다. 명장들과 지방 중소기업의 협업을 통해 명품을 만들겠다는 의도는 돋보였지만, 휴먼디자인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만 업체를 낙점하지 않아, 그의 신작 조명등 개인전과 다른 기업체의 협업 전시가 공존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멘디니의 짝이 될 기업은 폐막 때 발표한다.) 한·중·일 집 공간과 가구 등의 차이를 대비시킨 ‘아시아 디자인허브’전은 각기 다른 재료와 제작 전통을 녹여낸 3국 장인들의 생활 디자인을 차례로 엿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양질의 전시였다. 건축거장 르 코르뷔지에와 장인 샬롯 페리앙의 인테리어·가구 협업 과정을 소개한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전도 디자인사의 숨은 구석을 들여다본 이색전시였지만, 고립적인 공간 배치가 눈에 걸렸다.
2년간 준비하는 비엔날레인데, 이번 전시는 4달여만에 완성됐다. 행사 주체가 올해부터 비엔날레 재단에서 광주디자인센터로 바뀌면서 조직 이관과 정비가 늦어져 총감독이 3월에야 선임됐다. 실질적인 준비는 5~6월께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은 “4달여만에 총감독이 비엔날레 전시를 짜낸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했다. 행사예산을 2년전 절반인 23억원으로 깎은 광주시는 앞으로 산업성, 수익성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이라면, 비엔날레 명패를 내리고 참가비를 받는 국제디자인장터를 차리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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