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선우예권(26)에겐 러브콜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빼곡한 연주일정은 숨 돌릴 틈조차 없다. 당장 오는 7~8일 미국 링컨센터 콘서트, 15~21일 게반트하우스 데뷔를 포함해 독일 4개 도시 연주, 국내 3개 연주회 소화 뒤 다시 다음달 초 러시아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와 듀오 연주회를 해야 한다.
국제 콩쿠르에서 7번이나 정상에 오른 ‘국제 콩쿠르 최다 우승자’이기에 가능한 일정이다. “우승 많이 했다니까 여기저기서 찾아주시고, 해외연주 일정을 통해 제 연주를 들었던 분들이 다시 초청도 하고 추천도 하고 그래서일 겁니다.”
지난 7월엔 스위스 베르비에 뮤직페스티벌에 한국인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초청됐다. 1년 전 방돔프라이즈(베르비에 콩쿠르)에서 한국인 첫 우승을 차지하고 부상으로 얻은 기회였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마르타 아르헤리치, 미샤 마이스키 등 거장이 주축이 돼 신예들과 함께 혁신적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오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연주자 아르헤리치나 예프게니 키신 등이 참여하는 페스티벌이에요. 비록 뛰어난 실력을 갖췄더라도 아무나 설 수 없는 무대입니다. 제가 연주하기 전날 소콜로프가 연주해서 두렵고 긴장했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집중이 잘 됐어요.”
선우예권은 2016년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로 활동할 예정이다. 이미 빡빡한 연주일정이지만 새롭게 애호가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그동안 국내 활동보다 해외 활동이 더 많은 편이었는데, 2016년에는 국내 관객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져 매우 기뻐요. 한 해 다섯 번의 리사이틀 무대가 부담도 되지만, 상주 음악가 시리즈 공연을 통해 진지하고 내밀한 피아노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광화문 금호아트홀과 신촌 ‘금호아트홀연세’는 390석 규모로, 더 가깝게 청중과 만날 수 있는 공연장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빡빡한 연주 일정을 소화하려면 엄격한 자기 절제, 그리고 체력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선우예권은 ‘건반 위의 마라톤 맨’이라 불러도 좋겠다. 이달 중순에는 독일로 달려가 라이프치히, 에센, 바이마르, 프랑크푸르트 등 4곳에서 6번의 리사이틀을 연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제 데뷔 무대에요.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라벨의 ‘라 발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2번 등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그는 작곡가 중에 특히 슈베르트를 좋아한다. “우선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으로 곡이 선율 위주다 보니, 한 멜로디 안에 슬픔과 아픔 등 여러 감정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가슴 깊이, 오래도록 남아요. 내년쯤에 성악가들과 함께 ‘겨울 나그네’도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첼로가 들어가는 현악오중주 곡들도 좋고, 네 손을 위한 환상곡도 좋아해요. 아 참, ‘바위 위의 목동’도 즐겨 들어요.”
뉴욕에서 생활하는 그는 밝고 쾌활한 성격이다. 줄리아드 선배인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친하다. 지금 쓰는 야마하 스피커도 원래 임동혁 것이다. “음악은 주로 실내악과 성악을 많이 들어요. 친구들하고 노는 것,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요. 뭐, 운동은 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아직 못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 근육은 피아노에서 나오는 음악적 근육입니다. 하하하.” ‘건반 위의 마라톤 맨’은 제대로 쉬는 법, 노는 법도 알고 있었다.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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