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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헌법이 금지한 ‘이것’ 허하는 자, 누구냐 너

등록 2015-11-08 20:41

연극계 흔드는 ‘정치 검열’ 광풍
“효진아!” “어, 선생님…”

스승과 제자가 넉 달 만에 만난 곳은 뜻밖에 서울 대학로 ‘시위 현장’이었다. 제자는 청주대 연극학과 4학년 이효진(24).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 취업계를 내고 현재 극단 앤드씨어터의 조연출로 있다. ‘선생님’은 극단 고래 대표인 이해성 연출. 이효진 조연출의 졸업작품 지도교수였다. 중견 연출가 스승과 첫발을 딛는 조연출 제자는 왜 시위 현장에서 마주쳐야 했을까?

지난달 31일 예술위 지원과 국립국악원 공연에서 박근형 연출이 배제되자 안무가와 연출가들이 항의하는 모습. 윤혜숙 연출
지난달 31일 예술위 지원과 국립국악원 공연에서 박근형 연출이 배제되자 안무가와 연출가들이 항의하는 모습. 윤혜숙 연출
지난달 31일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공연을 방해하자 서울 대학로에서 항의에 나선 연극인들. 손준현 기자
지난달 31일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공연을 방해하자 서울 대학로에서 항의에 나선 연극인들. 손준현 기자

지난 9월 박근혜 정부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창작지원금 심의위원들의 선정 결과를 뒤집고,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박근형·이윤택 작가의 배제나 포기를 종용한 사실(<한겨레> 9월11일치 1면)이 확인됐다. 지난달 18일엔 예술위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있다’며 젊은 연극인들의 연극 프로그램인 ‘팝업씨어터’ 공연을 방해했다.(<한겨레> 10월29일치 2면) 유인화 센터장이 직원들과 함께 연극 <이 아이> 공연을 위해 치워놓은 테이블과 의자를 원상 복귀시켰고, 담당 부장은 연극 중 큰소리를 질렀고, 다음 작품의 대본 제출을 요구했다. 이어 2년 전 <개구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최고점을 받고도 올해 예술위 지원사업에서 빠졌던 박근형 연출이 다시 국립국악원 공연에서도 배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공연장이 연극에 적합하지 않다”는 믿기 힘든 이유였다. 지난달 29일 정영두 안무가는 이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문화예술계는 또다시 터진 ‘정치 검열’에 집단 반발하고 있다. 대학로와 서초동 국립국악원 앞에서 진상 규명과 기관장의 사퇴·사과를 요구하며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가.

예술위, 특정작가에 지원 포기 종용
지난달엔 “세월호 연상” 공연 방해
국립국악원도 박근형 연출 배제시켜

연극인들, 진상규명 요구하며 거리로
“일제 강점기도, 유신정권도 아닌데
검열로 자유를 침해? 말이 됩니까”
정영두 안무가, 일본서 피켓시위중
연극계 들끓는데 성의있는 해명·사과없어

정영두 안무가가 지난주 일본 도쿄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예술검열에 반대한다”며 항의하는 모습. 정영두 안무가 페이스북 사진
정영두 안무가가 지난주 일본 도쿄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예술검열에 반대한다”며 항의하는 모습. 정영두 안무가 페이스북 사진

■ 무섭다 그리고 화가 난다

지난달 31일 대학로예술극장 앞에서 20~30대 연극인들이 도화지에 쓴 손글씨들이 빼곡했다. “젊은이는 ‘세월’을 얘기하면 안 돼?” “해도 되는 이야기, 하면 안 되는 이야기가 따로 있나요? 노(NO) 검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을 방해한 공연예술센터를 정조준하는 내용이다. 진상 규명과 사과 요구도 봇물을 이뤘다. “공연 방해, 사전 검열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요구합니다!” “센터장님 나오세요, 명예롭게 답변 부탁”…. “유인화 센터장, 나와 커피 한잔 해요. 테이블 옮기지 않는 선에서”라는 애교 섞인 풍자도 나왔다.

이효진 조연출이 지도교수 이해성 연출과 마주친 것도 이곳에서다. ‘선생님’은 피켓을 들고 시위에 동참하고 있었고, 제자는 시민들에게 나눠줄 전단지 400장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이 ‘효진아’라고 불렀어요. 달려가 안겼지요. 졸업작품 지도받은 지 넉 달 만의 만남이라 반가웠고, 정치 검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선생님이라 반가웠어요. 제 목소리를 내는 선생님들이 별로 없으니까요.”

이 조연출은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화가 난다. “정말 무서워요. 앞으로 정부 관련 얘기를 하다간 걸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자유로운 사고를 이렇게까지 억압할 줄 몰랐어요. 연극 자체가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건데….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유신 정권도 아니고 검열로 자유를 침해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달 24~25일 ‘팝업씨어터’에서 송정안 연출의 <불신의 힘>에 출연하기로 돼 있던 공상아 배우는 결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는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어요.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에 무척 화가 나요”라고 했다.

예술위 센터에 이은 국립국악원의 공연 배제 논란으로 ‘정치 검열’에 대한 예술인들의 의혹과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시위를 한 정영두 안무가는 “국립국악원이라는 장르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사실 예술계 전체 또는 나라 전체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작은 일 하나도 표현하지 못하게 하면 나중에 더 큰 인권 문제, 삶의 가치의 문제 등에서 자유가 구속되는 게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 ‘동문서답 사과’ 화가 더 난다

‘정치 검열’로 들끓는데, 공연예술센터와 국악원은 설득력있는 해명이나 사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유인화 센터장은 예술위 사이버민원실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려 “저는 테이블 배치로 혼선을 드리는 등 ‘김정 연출가가 원하시는 대로’ 공연의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이어 “팝업씨어터에서 10월24일과 25일에 진행 예정이던 윤혜숙 연출의 작품과 송정안 연출의 작품의 공연 취소를 공고하지도 않고 두 분의 연출가와 소통하지 않은 점도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결국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공연을 방해하고, 대본 제출을 요구하는 등 ‘검열’ 논란을 불렀던 본질적 행위에 대해선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를 하지 않은 셈이다.

국립국악원 사태도 마찬가지다. 지난 6일은 예정대로라면 앙상블 시나위와 기타리스트 정재일의 콘서트, 그리고 박근형 연출의 <소월산천>이 국립국악원 무대에 오르는 날. 바로 이날 앙상블 시나위는 페이스북을 통해, 앞서 나온 국립국악원의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국악원은 “6개월 전에도 국악원 무대에 박근형 연출작을 올린 바 있다”며 이번 박근형 연출 연극 배제가 “정치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앙상블 시나위는 “당시 올린 작품은 박근형 선생이 연출을 맡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악원이 “공간의 음향 특성상 대사(연극)를 무대에 올리기 힘들어 연극을 뺀 것일 뿐”이라고 밝힌 데 대해서도 “대사 전달은 자연음향 상태에서 훨씬 전달력이 있고, 이미 음향장치 없이 수차례 공연을 함께 해와 검증된 문제”라고 반박했다. 정영두 안무가도 “이미 수많은 극장을 경험한 박근형 연출가를 겨냥할 의도가 아니었다는 이유가 어떤 논리인지, 어떤 분의 결정인지 국악원 쪽은 분명히 해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준교수로 있는 릿쿄대 강의를 위해 지난주 일본으로 간 정 안무가는 주일 한국대사관과 지하철 등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예술검열에 반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21세기의 날, 역사를 되돌리는 ‘검열’의 추한 칼춤이 공연계 인사들을 무대 아닌 거리로 자꾸 내몰고 있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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