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 전통춤문화유산의 현대적 계승 진단과 정책적 대안 모색
예산 수덕사에서 ‘전통춤 계승’ 세미나
국수호·김매자·김복희 등
한국춤 대가들 한자리에
‘한성준 현재화 작업’ 등 논의
수덕사와 한성준 인연도 ‘눈길’
국수호·김매자·김복희 등
한국춤 대가들 한자리에
‘한성준 현재화 작업’ 등 논의
수덕사와 한성준 인연도 ‘눈길’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4-4조 운율로 단풍잎을 때렸다. 단청이 없어 위엄을 더한 대웅전 맞배지붕 위에 빗방울이 가부좌를 틀었다. 지난 8일 만추의 예산 수덕사에 한국춤의 대가들이 모였다.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 국수호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최청자 세종대 석좌교수, 채상묵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이현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전수조교, 이은주 서울시문화재 살품이춤 예능보유자, 윤미라 대한무용학회 부회장, 박은영 궁중무용춘앵전보존회장, 김용철 섶무용단 대표 등이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춤꾼들은 왜 1500년 고찰이자 조계종의 종가인 수덕사에 모였을까? 이들을 불러모은 사람은 ‘우리춤의 아버지’ 한성준(1874~1941)이다.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 연낙재는 이날 한성준의 업적을 기리는 ‘내포 전통춤문화유산의 현대적 계승 진단과 정책적 대안 모색’이라는 세미나를 열었다.
한성준은 100여 가지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춤을 창작했다. 한마디로 근현대 한국 전통춤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선구자였다. 그의 춤 맥은 손녀인 한영숙과 조선 제일의 춤꾼 최승희로 이어지고, 다시 김매자, 이애주, 국수호 등 현대 우리춤의 대가들에게 튼실한 동아줄이 됐다.
수덕사와의 인연도 한성준의 춤꾼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주경 스님은 이날 논문에서 “한성준 선생이 1890년께 수덕사에 입산해 3년간 머물며 범패와 승무를 비롯한 다양한 재를 통해 불교의식을 접하며 불교 전통을 배웠다. 수덕사에서의 경험은 한성준이 그동안 익혀온 기예를 재정리하고 춤과 장단의 원리와 조화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하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덕사를 나온 한성준은 남사당패 등과 어울려 각종 민속연희에 참여하며 각 지방의 다양한 민속예능을 터득하고 기생들의 전통춤과 교방춤을 접하는 등 시대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춤과 예능의 기예와 안목을 갖추게 된다.
수덕사에 1905년부터 머물렀던 ‘한국불교의 중흥조’ 만공선사(1871~1946)와의 관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만공과 한성준이 직접 만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1900년께 한성준이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수시로 수덕사를 들렀으며, 1930년대 대웅전을 보수할 때 시주를 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만공과 한성준이 도저한 선풍과 예술혼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날 세미나 토론에서는 ‘국립 한성준 춤 전용극장 설립’이 집중 논의됐다. 한성준의 흔적이 남은 예산, 서산, 홍성 지역에 설립하자는 주장과 한국을 대표하는 춤꾼이었던 만큼 서울에 짓자는 얘기가 맞섰지만, 설립 자체의 필요성에는 뚜렷한 공감대를 이뤘다. 산사의 낮은 짧았다. 칠흑 어둠을 뚫고 산문을 나설 때, 춤꾼들은 심중에 ‘한성준 현재화’라는 등불을 하나씩 내걸었다.
수덕사/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한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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