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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나라 운명 짊어진 필부의 고통, 관객에 닿아”

등록 2015-11-16 18:52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정영 역을 연기한 배우 하성광.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정영 역을 연기한 배우 하성광.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하성광
중국 고전 <조씨고아>는 전형적인 복수 이야기다. ‘조씨고아’는 조씨 집안의 300명이 몰살당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아, 20년 뒤 원수이자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에게 칼을 겨눈다. 여러 차례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직접 칼을 휘두르는 조씨고아가 아니라, 그를 구해내 기른 ‘정영’이다. 작품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우 하성광(45)은 2015년 서울에서 정영이라는 인물을 되살려냈다. 그를 13일 오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조씨고아 살리려 처자식 잃은
시골의원 ‘정영’ 역 맡아 열연
관객들에 삶의 비극성 전달
“극장·연출·역할이 잘 만났다”

인터뷰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각색·연출 고선웅)에서 하성광은 복수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정영을 모든 힘을 쏟아내 온몸으로 연기한다. 몸도 지치지만, 복수 뒤의 정신적 공허함도 견뎌내야 한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내 속에 정영이 계속 남아있어요. 밤늦게 공연이 끝나고 몸은 지쳐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아요. 3주간의 공연기간 내내 견뎌야 할 무당의 몫이죠.”

정영이 관객의 가슴 깊이 파고드는 건, 그가 시골 의원으로서 필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초 사건은 조정의 고관대작들 사이에 벌어진 권력투쟁에서 비롯됐기에, 정영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 여러 사건의 연쇄는 정영을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무엇보다 정영은 남의 자식을 살리려 자신의 자식을 죽게 만들고 아내마저 잃는다. “필부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는 것인데, 우리 속에는 ‘정영’이 너무나 많아요.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견딘 건 백성들이잖아요. 관객들이 정영의 고통에 공감하는 건 이 때문일 겁니다.”

관객들은 정영의 고통을 통해 삶의 비극성을 확인하고 전율한다. 그리고, 저 배우는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그동안 어디 숨어있었나’라는 말까지 나온다. 배우 하성광도 관객 반응이 좋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단다. 어느 후배가 “형, 너무 좋았어”라고 문자를 보내올 때 무척 기뻤단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풀무질을 하고 있었죠. 이번에 좋은 역할에 좋은 극장, 좋은 연출을 만났어요.”

그는 전남 진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 어떻게 살지 막막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졸 학력으로 서울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들어 연극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대학은 나중에 다녔다. 그동안 <웰컴 투 동막골>, <타짜>등 영화에도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역시 연극이 제맛이란다. 무대는 온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고,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어 더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내년 3월부터 일본 무대에 설 계획이다.

모든 공연의 커튼콜(마지막 무대인사)이 여운을 담기지만, 이번 연극은 아주 강력하다. 다른 배우들의 인사가 끝나고 하성광이 흰 분칠을 한 얼굴로 등장한다. 삶이란 이토록 비극적인 것인가. 무대의 커튼이 마지막으로 닫히기 직전, 배우는 객석을 응시한다. “이 순간 관객들한테 마음 속으로 질문을 던져요. ‘여러분은 어떠세요?’라고. 당신의 현실은 안녕하신지 묻는 거지요.”

이번 연극은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이 무대에 올렸으며, 오는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어진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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