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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칠순 바이올리니스트의 빛나는 ‘종심’

등록 2015-11-16 18:53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이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이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리뷰 l 이츠하크 펄먼 70살 기념독주회

여느 때처럼 전동 휠체어 타고 등장
초반 피로감 살짝 엿보였지만
여전히 낡지 않고 멋스러운 연주
한때 ‘전설’이라 일컬어진 고령의 거장들을 만날 땐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오랜만이라면 더 그렇다. 농익은 음악성과 급격히 쇠퇴한 기량이 이루는 슬픈 부조화를 목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노쇠하고 빛 바랜 모습은 마지막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의 70살 기념 독주회는 이런 걱정을 무색하게 했다. 펄먼의 연주는 여전히 낡지 않고 멋스러웠다. 쇠한 기력은 어쩔 수 없이지만,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던 거장의 풍모는 변함 없었다. 전성기 시절과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나, 과거의 불꽃 튀는 비르투오시타(virtuosita·고도의 연주 기교)를 상기시키는 순간들이 빈번히 스쳐 지나갔다.

나이듦의 미덕일까. 욕심이 묻어나지 않는 그의 연주는 단정하고 고결했다. 70살을 기념하는 자리라고 했지만 평소 독주회와 다를 바 없다는 게 더 감동적이었다. 그 어떤 이벤트가, 일흔 살의 그가 변함 없이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사실보다 특별할 것인가. 펄만은 여느 때처럼 전동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등장했다. 르 클레르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라장조’(작품번호 9번)>로 청중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전날 대전 공연 이후 만 하루가 안 돼 서울 공연이 이뤄져 초반부에는 피로감이 조금 느껴졌다. 운지는 대체로 민첩하고 정확했으나, 활 놀림에 생기가 적었다. 음량도 이따금 작게 느껴졌다. 펄먼의 연주는 브람스의 ‘F.A.E. 소나타 중 스케르초 다단조’에 이르러 한결 활기를 띠고 집중력도 높아졌다. 바이올린의 최저음을 거칠게 긁으며 ‘운명의 동기’를 제시하는 부분에서부터 그의 독보적인 연주력에 잠시 나이를 잊었다.

뒤를 이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작품번호 24)>역시 전성기 시절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녹음한 음반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 호연이었다. ‘펄먼 사운드’라 불리는 따스한 음색과 쾌활한 운궁이 작품의 낭만적 달콤함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중간 휴식 이후 펄먼은 블루스와 재즈의 영향이 짙은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사단조’로 음악적 유연성을 넓게 펼쳐 보였다. 3악장의 무궁동(無窮動·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길이의 빠른 악구를 반복하는 기악곡)은 그가 상당한 강도의 연습을 계속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마지막 순서는 펄먼의 전매특허인 ‘즉석 연주’였다. 두툼한 악보 뭉치를 가지고 나와 즉흥적으로 다음 연주곡을 골랐다. 알베니즈의 ‘세비야’,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중 행진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번’, 존 윌리엄스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테마 등 7곡을 쉼 없이 연주한 뒤 쏟아지는 기립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떠났다.

이 날의 감동에는 펄먼과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피아니스트 로한 드 실바의 공도 지대했다. 드 실바는 펄만의 빈 틈을 청중이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교묘하게 메웠다. 음량이 작은 펄먼의 바이올린이 피아노에 묻히지 않도록 조용히 뒤에서 받쳐주다가, 추진력이 충분치 않을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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