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이면서 노크하는 소리. 검은 양복, 검은 구두, 검은 가방의 ‘기관원’이 방문했다. 여우 조사관인 폭스파인더(foxfinder)다. 그는 ‘수확량이 줄어든’ 부부의 농가를 24시간 감시했다. 정부는 ‘반국가세력인 여우들이 사회불안과 농작물 피해를 야기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왔다.
조사관은 몇 달 전 부부의 아들이 사고사 한 것도 여우 때문이 아니었느냐며 다그쳤다. 심지어 부부의 침실 생활까지 캐물었다. 남편하고만 하는지 다른 남자하고도 하는지, 마주보고 하는지 어떤지. 감시와 검열은 집요했다. 여우 조사관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이단 심판관과 닮았다. 그는 ‘유일 교리’에 어긋나면 마녀로 낙인찍는다.
13일 개막한 던 킹 원작의 연극 <폭스파인더>는 원인 모를 사건을 해결하는 조사관과 마을 사람들의 갈등을 다뤘다. 배우 손상규, 양종욱, 양조아와 박지혜 연출가가 구성한 ‘양손프로젝트’가 무대에 올렸다. 국가가 있지도 않은 반국가세력을 만들어 통치한다는 우화적 수법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빤하다. 따라서 연극적 성패는 설득력 있는 묘사를 통해 어떻게 공감을 끌어내는지에 달렸다.
연극은 100분간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착취’했다. 배우의 힘이 컸다. 아내 ‘주디스’ 역을 맡은 양조아. 미세하게 파열된 안구 모세혈관과 눈깔사탕만한 눈은 노심초사와 공포를 넘나드는 내면연기의 창이었다. 남편 ‘사무엘’을 연기한 손상규. 사고사로 죽은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여우가 범인’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여우 잡기에 혈안이 된 광기의 사내.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미술상인 ‘2015 올해의 작가상’ 시상식에 수상자인 오인환 작가의 대역으로 상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우 조사관 역의 양종욱.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체제의 하수인이었지만,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 누구보다 나약한 존재로 전락했다. 옆집 여자 역의 최희진. 감시와 통제에 맞서 합리적 의심을 하는 배역을 인상적으로 소화했다.
특이한 무대도 한몫했다. 무대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57석씩 객석을 배치했기에 관객은 서로 마주볼 수밖에 없다. 배우가 펼치는 국가의 감시를 보며 분노하고, 건너편 관객의 눈에 비친 공안통치의 공포에 몸을 떨기도 한다. 이쪽 관객에겐 저쪽 관객도 배우였다. 의자 6개, 토끼 몇 마리를 빼면 무대장치는 전무했다. 그 빈 공간을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로 채웠다. 이번 무대는 양손프로젝트가 지난해 올렸던 <죽음과 소녀>를 연상시켰다. 그때도 무대 양쪽에 객석을 두고 소도구를 극도로 자제했었다.
연극은 감시와 검열, 맹신과 회의, 복종과 불복종의 심리적 동선을 따라갔다. 조사관은 검열을 맹신하다가 회의하는 인물, 아내는 복종하는 캐릭터, 남편은 검열 때문에 망가지는 역할, 옆집 여성은 복종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28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