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제작발표회에서 존 듀 연출이 두 손을 들어 성악가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지난 18일 밤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화음이 3000석 객석 위 천장으로 솟구쳤다. 괴테가 쓰고 구노가 작곡한 오페라 <파우스트>연습이 한창이다. 파우스트 역의 테너 김승직에 이어 마르그리트 역의 소프라노 장혜지가 허공에 고음을 토해냈다. 관악과 타악이 다시 웅장하게 천장을 때렸다. 마르그리트가 자신의 아기를 죽이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잠깐요!” 지휘자가 말했다. 그러곤 “음빠빠빠, 음빠빠빠~” 입으로 음을 찍으며 가수에게 요구 사항을 전했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베를린 슈타츠오퍼’ 부지휘자를 지낸 윤호근이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선 정상급 악단인 경기필하모닉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이번 작품에선 8098개 관이 촘촘한 파이프 오르간도 연주한다. 98개 음색을 내는 파이프를 점검하느라 손전등이 이리저리 오갔다. 이날 연습엔 참가하지 않았지만 공연에선 서울시합창단과 스칼라오페라합창단 등 80명의 합창이 웅장함을 더할 예정이다.
무대는 제5막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이다. 무대 뒤편에 솟은 엘이디(LED) 기둥에는 빨강, 파랑, 보라의 불빛이 은은했다. 무대디자이너 디르크 호프아커가 만든 현대적인 무대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이 창단 30년을 기념해 ‘낭만음악의 종합선물세트’ 오페라 <파우스트>를 올린다. 늙은 철학자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젊음을 얻는다. 청년 파우스트는 마르그리트와 사랑을 하지만, 임신하자 버린다. 오페라 대본은 괴테 원작보다 많이 축약됐다.
연출가 존 듀는 독일 베를린의 도이체오퍼, 함부르크 국립오페라, 영국 로열오페라,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오페라극장 등을 거친 거장이다.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는 파우스트를 “지옥에 보내고 싶은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파우스트는 지혜를 구하기보다 다시 여인을 안을 수 있는 기력, 세속적 의미의 회춘을 추구합니다. 그는 젊고 순수한 여인을 얻지만 그녀가 임신하자 등을 돌리는 무책임한 인간입니다.” 마르그리트에 대해선 “자신의 아기를 죽였음에도 구원받는 이유는 반성하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뉘우치지 않은 파우스트는 구원받지 못했지만…”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존 듀가 생각하는 악마는 누굴까. “개인적으로 여러 번 만난 것 같은데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신문을 펼치면 날마다 모습을 봅니다. 악마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인간의 모습. 악마는 끔찍한 모습일 때보다 달콤하게 유혹할 때 더 위험한 거지요.”
이날 연습이 끝나자, 오케스트라 피트 속에서 보이지 않던 악단이 무대와 같은 높이로 솟아올랐다.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윤호근 지휘자를 붙잡고 설명을 들었다. “파우스트에는 서정적이고 우아한 낭만 음악의 요소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테너가 부르는 <정결한 집>이 가장 유명한 아리아죠. 오케스트라 연주는 독일식처럼 무겁고 꽉 채워진 게 아니라, 비단결처럼 투명하고 간결합니다. 프랑스 오페라에는 원래 웅장한 장면이 꼭 들어가요. 그래서 원래 악보에 없던 <병사들의 합창>이 들어가게 됐어요. 나중에 이 곡을 들은 베르디가 오페라 <아이다>에서 ‘개선행진곡’으로 인용하지요. 하하하.”
윤 지휘자는 “파우스트는 매우 어려운 역입니다. 70살 먹은 철학자의 한탄하는 노래에서부터 혈기와 욕망이 넘치는 젊은 남성의 노래까지 모두 소화해야 합니다. 그 폭이 엄청나게 커서 누구든 힘들어하지요”라고 덧붙였다. 파우스트 역 테너 이원종·김승직, 마르그리트 역 소프라노 정주희·장혜지, 메피스토펠레스 역 베이스 박기현·전태현. 오는 25~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399-100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