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 21, 23일 독일을 대표하는 3개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았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빈체로 제공 .
리뷰 l 독일 세 악단 내한공연
지난 19, 21, 23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뮌헨 필하모닉이 차례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이들 세 악단은 독일 오케스트라들의 음악적인 깊이와 폭, 독보적인 경쟁력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이번 내한 공연 감상의 초점은 지휘자와 악단의 ‘궁합’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아 청중의 지지를 받아온 세 악단이 새롭게 취임한 수석·객원 수석지휘자와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가 관건이었다. 세 지휘자가 모두 비독일계라는 점이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정명훈 베토벤 교향곡 2·3번으로
악단의 기품·고유한 음색 끌어내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러시아의 박진감·남미의 흥 더해
지휘자 에스트라다 리듬감 돋보여 뮌헨 필하모닉 게르기예프의 변화무쌍 지휘 맞춰
백건우 ‘베토벤 협연’ 완성도 높아
정명훈은 2012~2013 시즌부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객원 수석으로 취임했다. 2006년에도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이들이 서울에서 짝을 이룬 적은 있다. 하지만 수석 객원지휘자로 취임한 뒤 첫 내한인 이번 무대에서는 거의 한 몸에 가까운, 밀착된 교감을 선보였다.
정명훈은 467년의 장대한 역사를 품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내가 생각하는 ‘독일 사운드’를 내는 유일한 악단”이라는 찬사를 보낸 적이 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스타일을 강하게 보태지 않았다. 독일 관현악의 정수인 베토벤 교향곡 중 2, 3번을 택해 악단에 내재한 기품, 단원들 각자에 계승된 고유의 음색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 연주 전반에서 악단의 유구한 전통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느껴졌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19일 연주는 명성에 걸맞게 우아하고 섬세했다. 낭비되거나 버려지는 자원이 없었다. 정확히 정명훈이 미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고 당기는 만큼 되돌아왔다. 셈여림도 놀랍도록 정확히 계량되어 적소에 나타났다. 철저히 다듬어진 듯한데도, 전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갖춰진 기품이 은은히 배어 나왔다. 교향곡 3번 2악장에서 영웅의 죽음을 암시하는 ‘푸가토’는 탄식조차도 삼켜야 할 만큼 숭고했다.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지휘할 때와는 또 다른 음악세계를 펼쳐보이며 자신의 능력을 확고히 드러냈다.
2014~2015 시즌부터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젊은 신예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는 21일 내한 공연에서 뜻밖의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1부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서곡’에서부터 주도권을 강하게 쥐고 오케스트라를 쭉쭉 이끌었다. 콜롬비아 출신의 에스트라다는 ‘다국적’인 악단의 색채를 자신만만하게 활용했다. 글린카의 곡에서는 러시아적인 박진감에 남미적인 흥을 더해 경쾌하게 달렸다. 2부의 말러 교향곡 1번에서는 독일 철학자처럼 지적인 어조로 거인의 불길한 신화를 읽어내려갔다. 에스트라다 역시 근래의 여러 젊은 지휘자들처럼 현의 부피감을 줄이고 관악기와 타악기를 앞으로 내세우는 방향을 택했다. 관악기들이 비중이 커지면서 음색이 한결 생동감을 띠었다.
에스트라다는 남미 출신의 다른 지휘자들처럼 뛰어난 리듬감을 보여줬다. 놓치기 쉬운 작은 쉼표에도 긴장감을 실어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뉘앙스를 표현해내는 모습에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3악장의 고뇌와 몽상, 4악장에서의 절망과 광란의 폭주를 묘사해내는 솜씨는 왜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이 ‘파보 예르비의 후임으로 에스트라다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대답 같았다. 반면, 1부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 김혜진은 기술적으로 잦은 실수는 물론이고, 오케스트라와의 소통 능력에서도 아쉬움을 줬다.
지난해 7월 서거한 로린 마젤의 후임으로 2015~2016 시즌부터 뮌헨 필의 지휘봉을 잡은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여전한 ‘마린스키 차르’였다. 갑작스런 속주로 휘몰아치다가 갑자기 멈춰서는가 하면, 셈여림의 간극을 과장해 일순간 천둥번개를 내리꽂았다. 그만의 독특한 개성은 뮌헨 필을 만나서도 변함없었다.
23일 공연에서 뮌헨 필은 2013년 마젤과 함께 내한했을 때와 사뭇 다른 소리를 들려줬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뮌헨 필이 오랫동안 지녀온 온화한 체취가 게르기예프의 즉흥성과 긴장감을 포용하면서 독특하고 인상적인 결과물이 탄생했다는 점이었다. 뮌헨 필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은 러시아 악단을 연상시키는 전투적인 행진으로 3악장을 마무리 짓더니 4악장의 마지막에서는 슬픔을 정제하며 청중의 마음을 다독였다.
이날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최근 몇 년 사이 그의 협연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게르기예프의 스타일에 부합해 변화무쌍한 음색과 셈여림, 어조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시적인 서정이 넘치는 ‘황제’를 구현해내는 모습에서 관록이 느껴졌다.
게르기예프는 그간 런던심포니,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등을 이끌고 내한할 때마다 러시아 음악을 들려줬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장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뮌헨 필을 이끌고 베토벤이나 브람스 교향곡을 연주한다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남았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악단의 기품·고유한 음색 끌어내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러시아의 박진감·남미의 흥 더해
지휘자 에스트라다 리듬감 돋보여 뮌헨 필하모닉 게르기예프의 변화무쌍 지휘 맞춰
백건우 ‘베토벤 협연’ 완성도 높아
지난 19, 21, 23일 독일을 대표하는 3개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았다.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가 지휘하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빈체로 제공 .
지난 19, 21, 23일 독일을 대표하는 3개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았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빈체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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