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니나가와 유키오, 미야자와 리에.
연극 <해변의 카프카>의 원작자, 연출가, 배우는 모두 국내에서도 유명한 일본 예술가들이다. 2002년 발표된 원작은 하루키의 대표작으로,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처음으로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니나가와 유키오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연출가로, 이번 공연은 그의 팔순을 기념하는 월드 투어의 마지막 순서다. 주연을 맡은 미야자와 리에(42)도 1991년 18살 때 펴낸 누드 사진집 <산타페>등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진 배우다.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은 <해변의 카프카>가 24일 베일을 벗었다. 연극은 두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들어 가면서 마지막에 완성된 그림을 보여준다. 15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후루하타 니노)는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하고, 낯선 도시의 사설 도서관에 숨어든다. 거기서 신비한 여인 ‘사에키’(미야자와 리에)를 만나 연정을 품게 된다.
여기에 60대 노인 ‘나카타’(기바 가쓰미)는 어릴 적 사고로 지적장애가 있지만, 고양이와 대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나카타는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과정에서 ‘조니 워커’라는 이상한 인물을 만나는데, 어쩌다 그를 살해하고 도쿄를 떠난다.
각각 따로 진행되던 15살 소년과 60대 노인의 이야기는 연극의 2막에서 사에키를 중심으로 합쳐진다. 이 과정에서 사에키가 겪고 있는 고통의 실체가 드러난다. 사에키는 20살 때 겪었던 일에 인생 전체를 저당잡힌 채 삶의 촛불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 전체는 용서와 소년의 성장으로 마무리된다.
‘무대장치’는 독특하면서도 신선했다. 커다란 유리상자 안에 작은 무대가 마련돼 있고, 여러 개의 유리상자가 계속 교체되면서 무대는 수시로 변한다. 특히, 미야자와 리에가 파란 옷을 입고 작은 유리상자 안에 갇혀 등장하는 장면은 그의 저당잡힌 삶을 훌륭하게 상징한다.
그러나 15살 소년의 성애 장면이나, 두세 차례 등장하는 붉은 피 등은 한국 관객의 정서와 맞지 않을 수 있다. 디테일에 대한 지나친 충실함도 때로 극의 흐름이 느슨하고 난삽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맥베스>등 고전을 인용하는 여러 대목이 꼭 필요했을지 의문인 관객도 있을 것이다. 오는 28일까지 서울 엘지아트센터.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