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1824년 초연처럼. 사진 각 악단 제공
이달 내내 ‘합창’ 공연 잇따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가 ‘송년의례’로 정착된 지 오래다. 이달 내내 ‘합창’ 연주가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시작으로, 리신차오가 지휘하는 부산시립교향악단(17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도쿄 필하모닉 연합악단(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및 서울시향(27,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레오 크레머가 지휘하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옛 서울바로크합주단·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연주다.
같은 곡이 여러 차례 연주되지만, 동어반복은 아니다. 악단에 따라 음악적 어법과 연주 규모 등이 달라 각기 다른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이 작품은 사전 정보가 감상에 큰 도움이 된다. 베토벤 삶의 질곡과 시대적 배경, 작품의 예술적인 파격성 등을 이해하면 단순히 4악장 ‘환희의 송가’ 선율로만 알았던 이 곡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벼랑끝 삶속 생애 마지막 교향곡
암울한 시대의 서정·격정도 담겨
‘환희의 송가’ 4악장으로 유명
반목·갈등 해소 의미 즐겨 연주돼
악단 규모 등 달라 올해도 기대감 ■ 절망을 넘어선 환희의 노래
1824년 5월7일 오스트리아 빈 케른트너토어 궁정 오페라 극장. 베토벤 생애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이 초연됐다. 관현악과 성악이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교향곡이 처음 울려 퍼진 순간, 정작 작곡가 본인은 듣지 못했다. 심한 귓병의 후유증으로 청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베토벤은 초연 지휘를 맡아 무대에 올랐지만, 실제로는 그의 옆에 선 궁정악장인 미하엘 움라우프가 대신 지휘했다. 베토벤은 연주가 끝난 뒤 청중의 환호 소리조차 듣지 못해, 알토 독창자였던 카롤리네 웅거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어 뒤돌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곡을 창작할 무렵 베토벤의 삶은 벼랑에 선 듯 위태로웠다. 빈 음악계는 베토벤 특유의 파격적이고 심각한 음악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자극적인 줄거리와 귀에 꽂히는 아리아로 무장한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행했다. 조카 카를의 양육권 문제와 귀족의 후원금 등을 둘러싼 법적 분쟁, 지병과 강박적 성격에 따른 스트레스도 베토벤을 옥죄었다.
당대의 정치사회적 여건도 그에게서 희망을 앗아갔다. 프랑스혁명 이후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리라 믿었던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했고, 나폴레옹 몰락 후엔 메테르니히의 보수·철권통치와 시민운동 탄압이 이어졌다. 베토벤이 지지하던 공화주의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는 극심한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였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이 모든 암울함 가운데 탄생했다. 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우주의 기원에 가 닿은 듯 신성(神聖)을 품은 음악이었다. 1악장의 도입부터 기존 교향곡들과는 전혀 다르다. 처음 들으면 ‘이것이 교향곡의 시작인지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인지’ 헷갈릴 만큼 모호하다. 이 독특한 도입부는 우주의 빅뱅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합주로 나아간다. 2악장에서는 포악과 익살, 서정과 격정이 무시무시한 진폭으로 널뛴다. 소요와 소강을 반복하는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평화로운 3악장을 지나 4악장에 이르러 인성(人聲)이 오케스트라와 결합하면 ‘합창교향곡’은 다른 차원에 들어선다. 4명의 독창자(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는 처음부터 합창단과 함께 무대 위에 자리하기도 하고 2악장이 끝난 뒤 입장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독창자들이 오케스트라 앞에 자리하기도 했으나 요즘에는 대부분의 독창자들이 악단의 뒤편에 합창단원들과 함께 자리한다. 너무나 유명한 4악장의 ‘환희의 송가’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1785년에 지은 시 ‘자유 찬가’를 베토벤이 번안해 가사를 붙였다. “모든 인간은 한 형제”라며 전 인류의 우애와 단결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최대 2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전체가 한마음으로 부르는 장엄한 합창은 청중의 가슴을 깊이 울린다. 이 때문에 한 해 동안의 반목과 갈등을 해소한다는 의미로 연말에 즐겨 연주한다.
■ 초연 편성 vs. 현대적인 대편성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는 1824년 초연 당시의 편성으로 연주한다. 올해 창단 50주년을 기점으로 현악합주단에서 관악·타악을 포함한 실내관현악단으로 거듭난 이들에게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첫 도전이다. 지휘는 독일 슈파이어 대성당 오르간 연주자이자 고음악 전문가인 레오 크레머가 맡는다. 김민 음악감독은 “초연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50여명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약 60명의 합창단원(고양시립합창단), 4명의 독창자(신지화, 추희명, 정의근, 전승현)가 무대에 선다”고 밝혔다. 이어 “고악기를 사용하거나 당시의 주법을 재현하는 식의 원전 연주는 아니지만, 대편성으로 연주되는 현대적인 ‘합창교향곡’ 연주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리라 기대된다”며 “화려함과 생동감이 넘치는 레오 크레머의 음악적 개성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향은 2008년부터 ‘합창교향곡’을 송년의례로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도쿄 필과의 연합 연주, 단독 연주를 합쳐 총 3번 공연이다. 규모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의 2배다. 초연 당시의 편성을 더블링(2배 편성)해 97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4명의 독창자(홍주영, 백재은, 김석철, 박종민), 132명의 연합 합창단(국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이 출연한다. 케이비에스교향악단 역시 103명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130명의 연합 합창단(고양시립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의정부시립합창단), 4명의 독창자(캐슬린 김, 이아경, 니콜라이 슈코프, 노대산)가 출연한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암울한 시대의 서정·격정도 담겨
‘환희의 송가’ 4악장으로 유명
반목·갈등 해소 의미 즐겨 연주돼
악단 규모 등 달라 올해도 기대감 ■ 절망을 넘어선 환희의 노래
서울시향, 도쿄 필과 연합 연주. 사진 각 악단 제공
KBS교향악단, 최대 규모로. 사진 각 악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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