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부르는 순간 사라지는, 우리의 시절

등록 2015-12-10 21:09

[리뷰] 연극 ‘아홉 개의 하늘’

위장취업…구제금융…세월호…
1980년대초~2015년까지의 현대사
사랑했던 남녀의 개인사와 묶어
신파로 흐를 수 있는 구도 피해가
 사진 임재철 작가 제공
사진 임재철 작가 제공
청춘과 열정의 기억은 지금 어디에 웅크리고 있을까?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그 기억을 호명하는 순간, 열정은 또 다른 얼굴인 회한으로 얼마나 잽싸게 바뀌는지. 여름날 마른하늘을 가른 번갯불의 섬광, 또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 한 시절. 여기 <아홉 개의 하늘>(작·연출 최철)이라는 연극이 있다. 1980년대 초부터 2015년까지 두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격동의 현대사를 씨줄 삼고 개인사를 날줄 삼아 한 꿰미로 묶어 낸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길을 걸었지 /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 나는 알아버렸네 /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1983년 산울림의 노래가 울리는 작업실. 13살 때부터 봉제일을 한 1963년생 토끼띠 인선(이현주 분)이 드르륵드르륵 ‘브라더 미싱’을 돌린다. 그는 ‘1공단’에서 재단사로 일한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노동 현장에 뛰어든 1962년생 범띠 기영(서민균 분)이 작업실에 나타난다. 그는 ‘3공단’에서 프레스공으로 일한다. 이거, 너무 신파적 설정 아닌가? 아무튼, 이제 ‘공순이’와 ‘학삐리’가 사랑하고 어긋났던 33년간의 여정이 시작된다.

첫 장면에서 인선과 기영은 2014년 4월16일 참사를 보며 안타까움에 떤다. “그날, 사랑스런 너희를 삼킨 차가운 바다 위로 야만의 시대에 몰아친 삭풍과 함께 우리들의 하늘은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우리들의 하늘….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지금까지 힘겹게 내디디며 그려온 우리들의 하늘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무참하게, 허무하게.”

연극 <아홉 개의 하늘>은 이들이 만난 세상이다. 첫번째 ‘세월호 장례식장’ 뒤를 이어 두번째 1983년 ‘위장취업’, 세번째 1985년 노동운동의 열기, 네번째 1987년 수감 생활이 전개된다. 그해 6월항쟁의 결과물로 ‘형식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두 사람에겐 좌절과 고민이 찾아온다. 다섯번째 1991년 사회주의권 몰락, 여섯번째 1997년 ‘노동악법 날치기’ 통과와 구제금융, 일곱번째 2002년 한일 월드컵, 여덟번째 2004년 ‘살맛 나는 세상’으로 향한다는 착각, 아홉번째 ‘지금 여기’다.

개인사와 현대사를 연극으로 복원하는 일은 버겁다. 철 지난 무용담의 백화점식 진열이거나, 성찰 없는 후일담의 반복이기 십상이다. 연극은 ‘사회를 변혁하겠다는 열정의 시기’와 이후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좌절의 시기’를 순차적으로 그린다. 자칫 신념 과잉이나 신파로 흐를 수 있는 구도를 피해간 것이다.

극 가운데 <불나비>, <도나 도나>같은 노래는 옛 기억을 호명하는 도구로 호출된다. ‘피’(유인물)를 돌리다 한 사람은 붙잡히고 한 사람은 도망간다든가, 고문을 당한 끝에 동료의 이름을 댄 뒤 괴로워하는 그 시대의 삽화들도 크로키로 그려낸다. 그런데 그 시대와 요즘이 너무 닮지 않았나? 오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성균소극장. (02)734-7744.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