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살의 할머니가 홀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지를 걷는다. 이는 춤에 대한 영화인가, 인생에 대한 영화인가.
<라스트 탱고>(감독 게르만 크랄)는 탱고의 역사를 바꾼 두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여든살의 ‘마리아 니에베스(니브) 레고’와 여든세살의 ‘후안 카를로스 코페스’가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담담하게, 때로 격정에 차서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가난한 이들의 유일한 뒷골목 오락거리인 탱고를 최고의 예술 공연으로 바꾼, 탱고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기억되는 짝(커플)이다. 이들은 각각 14살, 17살에 처음 만나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이 춤을 췄다. 그동안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증오했다. 어떤 남자도 후안처럼 춤추지 못했고, 어떤 여자도 마리아만큼 추지 못했기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지금은 완전히 돌아서 각자 늙어가고 있다.
영화는 젊은 춤꾼들이 마리아와 후안을 찾아가 지난 세월을 묻고, 두 사람이 답하는 형식이다. 틈틈이 젊은 춤꾼들이 두 사람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등장해 화려하고 아름답게 춤춘다. 두 사람은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1952)를 다섯 번 이상 보고, 돌아오는 길에 텅 빈 밤거리에서 춤을 췄다고 한다. 영화 포스터는 이를 재연한 황홀한 춤사위의 한 장면을 담았다.
영화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인 탱고가 마리아와 후안의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를 잡아가는 ‘탱고의 역사’를 다룬다. 하지만, 더 많은 관객은 두 사람의 사랑과 미움에 깊이 빠져들 것이다. 사랑으로 결혼식까지 올렸던 두 사람은, 운명처럼 엇나간다. 후안은 자살 시도를 하고 그 곁에는 마리아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
운명이 운명인 것은 세월이 지나서 알게 될까. 마리아는 후안한테 여전히 존경심을 갖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증오하고 있다. 증오하는 사람과 사랑의 춤을 춘다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마리아가 팔순 가까운 나이에 무대에 올라 엉거주춤 춤을 추지만 객석의 관객들은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낸다. 저런 게 삶이구나. 마리아가 삶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마다 깊은 통찰이 엿보인다. 저런 게 노년의 지혜이구나.
극영화 <파리, 텍사스>(1984)와 <베를린 천사의 시>(1987)의 감독이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1999)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2) 등 예술가의 삶을 그린 다큐를 연출해온 빔 벤더스가 제작했다. 31일 개봉. 12살 관람가.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사진 ㈜미로스페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