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부지휘자 최수열
서울시향 부지휘자 최수열
회색 상의를 입은 최수열(36) 지휘자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지휘자들은 무대에서 검은 옷을 입는다. 연주자들에게 지휘봉이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수열은 무대 밖에서도 검거나 회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는다. 그러다 보니 약간 ‘튀는’ 운동화를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신발만이라도 화려하게 개성을 표출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지휘자스럽다’. 캔버스화와 러닝화의 수집 비율을 50 대 50으로 맞춘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처럼 ‘정확하게 편성해야’ 직성이 풀린다. 밑창이 유리처럼 투명한 것, 빨간 상표가 매력적인 것 등 선호하는 운동화도 음악적 취향을 닮아 다채롭다. 부드러운 미소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최수열. 그렇지만 지휘봉을 드는 순간 그는 ‘난해한 곡들’과 대결하는 ‘검투사’로 돌변한다. 올해 성남아트센터 마티네(오전·낮 공연) 시리즈에서 ‘슈베르트 교향곡 전곡 연주’를 성사시킨 배경엔 그의 이런 전투력이 크게 작용했다.
슈베르트 교향곡 전곡 연주 등
36살 젊은 예술가의 전투력 빛나
연습때도 깐깐하기로 손꼽혀 내년 프로그램 ‘음악극장’ 주도
연극처럼 연주회에 낭독 곁들여
“스토리 있어 관객 소통 쉬울 것” ‘18년 성장기’ 담은 책도 출간
예술가들과의 인연·에피소드
서울시향 연습실 풍경 등 담아 “다른 마티네와 차별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오케스트라를 듣는 이들은 쉬운 걸 바라지만, 가볍고 쉽고 익숙한 것만 연주하면 연주자들이 대충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생소한 곡, 난해한 곡을 자주 연주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건 ‘청중을 고려하지 말자, 음악만 고려하자’는 제 이기적인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최수열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는 최근 <젊은 마에스트로의 코데타>(아트북스)라는 책을 냈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닌 젊은 지휘자의 ‘18년 성장기’다. 2013년 정명훈(61)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지휘 마스터클래스’에서 최고점을 받은 그는 이듬해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발탁됐다. 서울시향의 여러 공익 프로그램과 함께,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54)과 함께 서울시향의 ‘아르스노바’ 프로그램을 이끌어오면서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부지휘자실에서 그를 만났다. ‘난해한 곡’과 대결을 즐기는 최수열은 연습도 깐깐하기로 소문났다. “이번 책에도 나오지만 연습 중 문제가 있으면 꼭 지적하는 젊은 지휘자로 최희준, 성시연, 최수열 등을 꼽던데…”라며 그에게 물었다. 답변은 두 지휘자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했다. “최희준 지휘자는 연주와 연습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분이고, 성시연 지휘자는 남성보다 더 큰 에너지와 열정을 지닌 분입니다. 저는 객원 지휘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악단을 대하는 방식이 악단마다 다른 것 같아요. 좀 짜증을 내줘야 하는 악단, 좀 아카데믹하게 대해야 하는 악단 등등. 악단들도 절 싫어하지는 않아요. 친한 이들을 찾아 함께 담배를 피우고 ‘끝나고 밥 한번 먹자’며 분위기 파악도 하고요.” ‘지휘자 최수열’은 연주자를 악기처럼 잘 다루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주도한 내년 서울시향의 프로그램 <음악극장>은 무척 흥미롭다. “음악극장을 모두 네 차례 하는데, 연극처럼 낭독을 곁들인 연주회입니다. 내년 1월22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정화’를 올리는데, 스토리가 있는 곡이라 관객과 소통하기 쉬울 것이라 믿습니다. 연주에 앞서 배우를 등장시켜 낭독과 독백을 하는 거죠. 80~90명의 오케스트라를 투입하지만, 몰입감을 위해 300석 규모의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크누아(KNUA)홀에서 진행합니다.” 최수열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특히 좋아한다. “한마디로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법: 악기를 조합하고 다루는 기술)의 천재였죠. 또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정화><돈 후안>, <돈키호테>, <영웅의 생애>, <장미의 기사>등 스토리가 있는 음악을 풀어내는 데 천재였고요. 이 사람 음악은 요즘 대중음악으로 치자면 ‘신사동 호랭이’나 ‘돈 스파이크’인데 우리나라에선 너무 저평가됐어요. 연주하기 까다롭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낸 책 <젊은 마에스트로의 코데타>는 3부로 구성됐다. 1부 서곡(overture)엔 어릴 때부터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국내 수학기, 2부 신포니에타(sinfonietta)엔 독일 드레스덴과 프랑크푸르트 유학 시절, 3부 변주곡(variations)엔 본격적인 지휘자 생활 이야기다. 서울시향 연습실 풍경, 진은숙 작곡가와의 인연, 김선욱 피아니스트와의 에피소드 등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지휘자의 세계를 빼곡하게 담았다.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을 필자에게 물었다. 현대음악 작곡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지금은 폐간된 클래식 음악잡지를 발행했었다. 그 잡지 제목은 뭘까? “월간 <클래식 피플>”이라고 그는 답했다. 다음으로, 한예종 지휘과를 다니던 그는 코앞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몰래 잠입해 리허설을 지켜보며 지휘 공부를 했다. 그런 사연을 들은 공연 담당자는 최수열을 마음대로 듣도록 들여보내 줬다. 그 사람은 대체 누굴까? 최수열은 “정동혁 전 서울 예술의전당 예술사업본부장”이라고 했다. 마지막 궁금증. 최수열은 대학 4학년 때 객석에서만 듣던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한예종 오케스트라의 앙코르 연주곡으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무곡’이었다. 그날 우연히 연주를 지켜본 한 공연 기획자는 최수열의 매니저가 돼, 지금까지 동행하고 있다. 그 매니저는 누굴까? 예상한 대로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였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36살 젊은 예술가의 전투력 빛나
연습때도 깐깐하기로 손꼽혀 내년 프로그램 ‘음악극장’ 주도
연극처럼 연주회에 낭독 곁들여
“스토리 있어 관객 소통 쉬울 것” ‘18년 성장기’ 담은 책도 출간
예술가들과의 인연·에피소드
서울시향 연습실 풍경 등 담아 “다른 마티네와 차별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오케스트라를 듣는 이들은 쉬운 걸 바라지만, 가볍고 쉽고 익숙한 것만 연주하면 연주자들이 대충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생소한 곡, 난해한 곡을 자주 연주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건 ‘청중을 고려하지 말자, 음악만 고려하자’는 제 이기적인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최수열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는 최근 <젊은 마에스트로의 코데타>(아트북스)라는 책을 냈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닌 젊은 지휘자의 ‘18년 성장기’다. 2013년 정명훈(61)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지휘 마스터클래스’에서 최고점을 받은 그는 이듬해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발탁됐다. 서울시향의 여러 공익 프로그램과 함께,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54)과 함께 서울시향의 ‘아르스노바’ 프로그램을 이끌어오면서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부지휘자실에서 그를 만났다. ‘난해한 곡’과 대결을 즐기는 최수열은 연습도 깐깐하기로 소문났다. “이번 책에도 나오지만 연습 중 문제가 있으면 꼭 지적하는 젊은 지휘자로 최희준, 성시연, 최수열 등을 꼽던데…”라며 그에게 물었다. 답변은 두 지휘자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했다. “최희준 지휘자는 연주와 연습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분이고, 성시연 지휘자는 남성보다 더 큰 에너지와 열정을 지닌 분입니다. 저는 객원 지휘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악단을 대하는 방식이 악단마다 다른 것 같아요. 좀 짜증을 내줘야 하는 악단, 좀 아카데믹하게 대해야 하는 악단 등등. 악단들도 절 싫어하지는 않아요. 친한 이들을 찾아 함께 담배를 피우고 ‘끝나고 밥 한번 먹자’며 분위기 파악도 하고요.” ‘지휘자 최수열’은 연주자를 악기처럼 잘 다루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주도한 내년 서울시향의 프로그램 <음악극장>은 무척 흥미롭다. “음악극장을 모두 네 차례 하는데, 연극처럼 낭독을 곁들인 연주회입니다. 내년 1월22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정화’를 올리는데, 스토리가 있는 곡이라 관객과 소통하기 쉬울 것이라 믿습니다. 연주에 앞서 배우를 등장시켜 낭독과 독백을 하는 거죠. 80~90명의 오케스트라를 투입하지만, 몰입감을 위해 300석 규모의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크누아(KNUA)홀에서 진행합니다.” 최수열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특히 좋아한다. “한마디로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법: 악기를 조합하고 다루는 기술)의 천재였죠. 또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정화><돈 후안>, <돈키호테>, <영웅의 생애>, <장미의 기사>등 스토리가 있는 음악을 풀어내는 데 천재였고요. 이 사람 음악은 요즘 대중음악으로 치자면 ‘신사동 호랭이’나 ‘돈 스파이크’인데 우리나라에선 너무 저평가됐어요. 연주하기 까다롭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낸 책 <젊은 마에스트로의 코데타>는 3부로 구성됐다. 1부 서곡(overture)엔 어릴 때부터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국내 수학기, 2부 신포니에타(sinfonietta)엔 독일 드레스덴과 프랑크푸르트 유학 시절, 3부 변주곡(variations)엔 본격적인 지휘자 생활 이야기다. 서울시향 연습실 풍경, 진은숙 작곡가와의 인연, 김선욱 피아니스트와의 에피소드 등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지휘자의 세계를 빼곡하게 담았다.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을 필자에게 물었다. 현대음악 작곡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지금은 폐간된 클래식 음악잡지를 발행했었다. 그 잡지 제목은 뭘까? “월간 <클래식 피플>”이라고 그는 답했다. 다음으로, 한예종 지휘과를 다니던 그는 코앞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몰래 잠입해 리허설을 지켜보며 지휘 공부를 했다. 그런 사연을 들은 공연 담당자는 최수열을 마음대로 듣도록 들여보내 줬다. 그 사람은 대체 누굴까? 최수열은 “정동혁 전 서울 예술의전당 예술사업본부장”이라고 했다. 마지막 궁금증. 최수열은 대학 4학년 때 객석에서만 듣던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한예종 오케스트라의 앙코르 연주곡으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무곡’이었다. 그날 우연히 연주를 지켜본 한 공연 기획자는 최수열의 매니저가 돼, 지금까지 동행하고 있다. 그 매니저는 누굴까? 예상한 대로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였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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