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케피’. 사진 샘컴퍼니 제공
리뷰 l 뮤지컬 ‘오케피’
연주자들 애환 다룬 ‘착한 작품’
배우 황정민 출연·연출로 화제
좋은 작품인지는 여러가지 뒷맛
연주자들 애환 다룬 ‘착한 작품’
배우 황정민 출연·연출로 화제
좋은 작품인지는 여러가지 뒷맛
뮤지컬 <오케피>가 막을 올렸다. 영화배우 황정민이 출연할 뿐 아니라 연출까지 맡아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이번 겨울 대극장 뮤지컬 공연 가운데 유일한 초연이기도 하다.
작품은 화려한 뮤지컬 무대 아래에서 일하는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케피(‘오케스트라 피트’의 일본식 줄임말)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곳이다. 피트(pit, 구덩이)라고 하는 말에서 드러나듯, 화려한 무대와 달리 어둡고 옹색한 공간이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면 먼지가 떨어지기도 한다.
황정민과 오만석이 교대로 연기하는 지휘자(컨덕터)가 무대에 등장하고, 나머지 12명의 연주자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공연의 반주를 시작하는데, 이들 사이에 끊임없이 작은 사건이 이어지면서 연주자들의 삶의 애환이 차례로 드러난다.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애환을 담았다는 점에서 남다른 시도로 평가된다. 원래 세상이라는 게 이런 이들의 노고가 있기에 돌아가는 것 아닌가. 또, 지휘자가 볼레로 음악에 대한 비유를 통해 ‘성실한 발걸음이 쌓여 우리는 성장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대목은 울림이 있다.
기억에 남는 노래도 여럿이다. 트럼펫 연주자가 부르는 ‘망해버려, 뮤지컬’은 웃음을 자아낸다. “30분이면 끝나는 별 것 아닌 이야기”라며 뮤지컬 공연을 풍자한다. 합창곡 ‘우리들은 원숭이가 아니야’는 배우들이 객석으로 뛰어들어 함께 노래한다. 연극 <웃음의 대학>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미타니 코키가 만든 첫 뮤지컬을 수입한 것으로, 원작과 달리 출연자는 일본 이름 대신 악기 이름으로 불린다. 황정민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웃음의 대학>출연을 계기로 원작을 만났고 지난 5년 꾸준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주연 중심의 다른 작품과 달리, 오캐피는 여러 배우들이 두루 자신의 사연과 노래를 갖고 있다. 지휘자의 별거 중인 아내인 바이올린 연주자(박혜나, 최우리)와 오케스트라의 기둥이 되고 있는 오보에 연주자(서범석, 김태문), 여러 남자 단원들의 마음을 흔드는 하프 연주자(윤공주, 린아) 등은 흥미로운 인물 설정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다만 작품이 ‘착한 뮤지컬’을 넘어 ‘좋은 뮤지컬’인지를 두고는 여러 뒷맛이 남는다. 1막에서 각 출연자들의 성격과 사연을 드러내는 과정은 늘어지고, 지휘자가 자주 관객을 향해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은 친절하다기 보다는 청소년 연극의 느낌을 준다. 2시간50분(중간 쉬는 시간 포함)의 공연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또, 각각의 출연자들은 사랑, 음악, 가족 등을 하나씩 상징하는데, 그 사연들은 서로 맞물리지 못한다. 단원들 사이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남녀관계 묘사는 과다해 보이고, 20년 만에 만나는 딸 이야기는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부족하다. ‘일상’을 묘사하고자 요리나 가구 이름을 길게 나열하는데, 무대에 지나치게 많은 소품을 올려놓은 모양새다. 여러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모자이크처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최종 지점에 도착할 때면 ‘먼길을 돌아왔다’는 느낌이 남는다. 내년 2월28일까지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문의 02)6925-5600.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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