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임명된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가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의 계획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물 흐리는 인물 퇴출시키고
작품 구입 ‘짬짜미’ 살펴보길
작품 구입 ‘짬짜미’ 살펴보길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조차 모릅니다. 다만 전 직장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전시장의 작품을 철수한 전력을 기억할 뿐입니다. 한글을 모르는 당신은 이 글을 못 읽을테지만, 번역을 통해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부임하기 전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술관을 관장하는 문화부에서 규정을 개정해 작품수집위원회, 인사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관장의 권한을 축소하고 운영자문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관장으로서 미술관 운영방향의 설정, 인사권 행사, 소장품 구입에 제한을 받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전임 관장 시절 이러저러한 개판을 쳤기에 자업자득, 자승자박이기는 하지만, 당신이 관장으로서 뜻을 펼치기에 적절한 조건은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국현은 직제로서는 한국을 대표하지만 전시나 구성원이나 소장품이나 한국을 대표할 정도로 질이 높지 않습니다. 구성원들이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말이죠. 당신 자신과 국현의 이름값을 위해 해야 할 몇 가지를 귀띔 드립니다.
전시의 양을 줄이고 질을 높이십시오.
현재 국현은 전시가 너무 많습니다. 학예연구사나 디자이너가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입니다. 사실 그렇게 많을 필요도 없습니다. 잔 가지를 쳐내고 국현이 꼭 해야할 것으로 축소하길 바랍니다. 그 중에서 똘똘한 것을 한 해에 한 건 정도 골라, 볼 만한 것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국제적인 감각과 네트워크가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만, 전세계에서 국현의 전시를 보러 오는 걸작으로 바꿔 주세요. 아니, 중국이나 일본에서만이라도 관객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의 모리미술관 전시를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얼마나 부러워하며 들었던지요. 과문한 탓도 있겠으나 지금껏 국현 전시를 보러 외국인 관객이 몰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습니다. 모두 국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기획된 전시가 적절한지 재검토하시길 바랍니다. 전직 관장 때 연줄로 끌어들인 전시가 있었고, 예정된 전시에도 그런 것들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학예연구사의 능력을 재검토하여 부적절한 인물은 퇴출시키기 바랍니다.
대다수는 능력있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출신과 연줄로 입사해 과분한 자리를 차지해 전체 학예실의 물을 흐리는 인사가 있습니다. 몇몇은 모자라는 능력을 편법으로 채우고 있기도 합니다. 연조낮은 학예사들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거나 그들이 기획한 전시에 이름을 얹어 묻어가고 있습니다.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아 현재는 고질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울관에 있는 인사중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쓸어내십시오. 유능한 학예사를 그 자리에 앉히고 그것으로 모자라면 국내외에서 능력있는 인물을 초빙하십시오.
서울관과 과천관이 이원화한 관리체제를 일원화 하십시오.
현재 과천관과 서울관의 학예인력은 경계가 지워져 두 전시관의 전시를 넘나들지 못합니다. 따라서 과천관은 적은 인력으로 과중한 일에 시달리고 서울관 인력은 아주 널널한 편입니다. 특히 서울관 인력이 한시적인 직제로 채워져 미술관 전시를 빛내기보다는 근무하는 동안 자신의 이력서를 채울 궁리를 합니다. 전시 디자인 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시내용에 따라 적절한 학예연구사가 경계를 넘어 맡을 수 있게 하십시오. 아예 통합운영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소장품 구입도 눈여겨 보길 권합니다.
전 관장 때 관장 개인의 친소에 따라 작품을 구입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수집위원회를 유명무실한 인물 또는 자신과 친한 인물로 채움으로써 자신과 관련된 인사의 작품을 포함시켰다는 혐의를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신도 뜻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술품 구입 때 내부인사와 화랑의 짬짜미가 있는지를 살펴 보길 바랍니다. 일부, 아주 극히 일부라고 간주됩니다만, 화랑을 돌며 자신이 작품 구입에 힘을 쓸 수 있음을 암시하며 권력을 누린 사례가 있다는 뒷말이 들립니다. 소장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국미술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돼야 합니다.
중요한 거 하나 더.
임기동안 생산한 서류들을 공개하십시오. 현재 국현에서도 문서들을 공개하고 있습니다만, 공개하는 것들이라곤 사무용품 구매내역 등 쓰잘데없는 것들입니다. 정작 중요한 전시 진행과정이나 수장품 구매내역 등은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각종 운영위원회 구성원이나 회의록은 당근입니다. 당해연도의 것이 외부에 유출되어 사전에 외부에서 개입하는 부작용을 부른다면, 1년뒤 공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관련된 사람들이 불성실하거나 무책임한 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3년 임기동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제한돼 있습니다. 아마 당신은 연임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여, 임기 동안 위의 문제를 풀어 누가 당신의 후임이 되더라도 미술관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십시오. 한국인으로서 그것만으로도 당신께 매우 감사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화부의 입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비뚤어진 장관의 고집으로 ‘특채’되어 그럴 형편이 못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윗기관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당신은 ‘바지사장’이란 오명을 쓸 것입니다. 직전에 축소된 관장의 권한을 회복하십시오. 당신이 좋아서가 아니라 국현을 위해서입니다.
부디 성공적으로, 무사히 임기를 채우기를 빕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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