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호 작가의 영상작업들은 소외된 이들과 버림받은 것들을 온기 어린 문학적 감성으로 투영해낸다. 전시에 나온 그의 올해 작품인 ‘흙무덤×할머니’. 사진 성곡미술관 제공
유비호 ‘해질녘 나의 하늘에는’전
재개발 지역 허물어진 집터 등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 포착해
삶의 힘겨운 일상 영상에 담아
재개발 지역 허물어진 집터 등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 포착해
삶의 힘겨운 일상 영상에 담아
하염없이 되풀이되는 우리 삶의 힘겨운 풍경들이 한자락씩 화면에 이끌려나온다.
해변에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산길을 마냥 걸어가거나 종일 흙더미를 쳐다보며 존재를 붙드는 사람들 모습이 여러 채널의 비디오 영상 속에 빛을 발한다. 빛나는 건 사람들만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 일상과 함께 하는 빛덩어리인 햇살이 사람들의 영상 옆에 또다른 실황 영상으로 투영되고 있기도 하다. 비닐이 바닥에 깔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번져가는 전시장에서 이렇듯 엄숙하고 단조롭게 비춰지는 사람과 태양의 일상 풍경들은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의 본원적인 비극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비호(45)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전 ‘해질녘 나의 하늘에는’은 여느 미디어 영상전과는 다른 시적인 감성이 넘실거린다. 재개발 지역의 허물어진 집터나 흙더미가 등장하고, 허름한 민가 골목길에서 소복 할머니를 업고 방황하는 절뚝거리는 남자의 영상이 되풀이되며 안개 낀 바다를 배경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 등에서 관객들은 산업화, 도시화의 그늘이나 세월호 참사 등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의 흐름과 구도 속에 드러난 작가의 관심이 고발이나 비판 대신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의 운명과 삶의 처연한 본질을 암시하듯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업들은 문학적인 울림을 얻게된다.
숲 속에 굳은 듯 마냥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관조하듯 담은 영상 ‘풍경이 된 자’나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르는 남자의 고된 산행을 5개의 대형 연속 화면에 등장하는 하체 움직임만으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는 ‘나의 뫼르소’에서 이런 의도가 좀더 분명하게 감지된다. 헐떡거리며 산길을 올라가는 남자의 몸은 끝없이 몸과 정신을 꿈틀거리며 생명을 지속해야 하는 인생의 고단함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용산참사, 세월호 침몰, 씨랜드 화재,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과의 대화를 담은 ‘이너뷰’ 영상들도 사건 당시의 상황과 문제점에 대한 폭로와 성토가 아니다. 인생에 큰 생채기를 남긴 사건 이후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지금 그들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를 담담하게 털어놓는 영상 고백록 성격이어서 현실을 통해 인간 본연의 존재를 통찰하려는 생각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현대인들이 시간, 속도에 쫓겨 공간을 보는 시선이 좁아졌다. 전시된 신작들은 인공 환경으로 뒤덮힌 이 시대 현실 속에서 우리가 본디 지녔던 심미적 감각들을 일깨우려는 노력으로 나온 것들”이라고 말한다. 전시 제목은 칠레의 유명한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연시에서 따온 것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지금 이 시대 삶의 조건에 대해 온기어린 위로를 건네고 싶은 마음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이 미술관이 제정한 ‘2014 내일의 작가상’ 수상 기념전시다. 31일까지. (02)737-765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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