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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격식 깨고 1대1 공연 시도…‘전방위 예술’ 누비는 전통 가객

등록 2016-01-06 20:14

박민희. 사진 박민희 제공
박민희. 사진 박민희 제공
8일 토크콘서트 여는 박민희 인터뷰
소리로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

젊은 가객 박민희(33)가 자신의 작업을 표현한 말이다. 중요무형문화재 30호 ‘여창 가곡’ 이수자로서 ‘소리’를 하되, 공연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예술적 ‘그림’을 그린다.

그가 부르는 가곡은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도,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도 아니다. 가곡은 조선시대 풍류방에서 읊던 시와 시조 등을 말한다. 박민희는 엄격한 격식을 따라야 하는 가곡에서 전통의 격식을 벗어났다. <가곡실격>연작에서 그는 스스로를 ‘실격’시켰다. 5개의 방에서 5명의 가객이 각각 노래를 하면, 관객은 1명씩 각 방을 돌며 일대일로 노래를 감상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공연, 곧 1인 극장 형식의 작업은 대량전달이라는 기존 공연의 개념을 해체한다. 가곡 본래의 의미가 시와 시조이므로, 단 한 사람이라도 내밀한 소통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박민희는 격식의 무덤을 창조의 요람으로 삼는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박민희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 음악과 무용·미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의 작업은 경계에서 피는 ‘전방위 예술’의 꽃이다. 장르를 아우르는 다원예술 작업은 음악계 특히 전통음악계에서는 무척 드물다. <가곡실격>연작 외에도 <각자의 시선>등의 다원예술 작업을 작·연출·출연하고 음반 <박민희 여창 가곡 한바탕 사랑거즛말이>와 <더 하우스 콘서트 실황음반>등을 냈다. 현대무용 등 장르 간 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여창가곡’ 이수
전통음악계서 드문 다원예술 시도
음반 발매·현대무용과 협업도
“듣는 음악 아닌 경험하는 음악 지향”

박민희가 그동안의 작업에 대해 관객과 얘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8일 서울 인왕산 자락 소극장 ‘서촌공간서로’에서 여는 ‘별난 소리판’ 토크콘서트다. 지난 4일 서촌에서 그를 미리 만났다.

“전통 공연방식이 현대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얘기하려 해요. 옛날엔 무대가 아니라 방이나 저잣거리에서 공연했잖아요? 전통 공연은 가까운 곳에서 서로 나눈 것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가곡실격>처럼 가장 가까운 거리인 ‘일대일 공연’이 된 거예요. 저는요, 대량생산을 싫어하거든요. 100명의 관객보다 1명의 관객을 설득하는 게 더 쉽지 않나요? 이번 토크콘서트에서는요, 제 작업 얘기와 함께 그런 공연도 보여주려고요.”

박민희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하다. 그런데 2014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공연에서 염소 소리 등 기상천외한 목소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여창 가곡’은 표현력이 탁월하다. 재즈 등 현대음악이나 현대무용과 접촉면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발성 연습은 어떻게 할까?

“관악기처럼 발성을 다듬어요. 선생님이 부르면 따라 하고 계속 반복해서. 선생님이랑 소리가 같아질 때까지 합니다. 고등학교 때 개인레슨을 받았는데요, 선생님도 선생님의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게, 몸에서 몸으로 이어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소리는 무형이지만 역사성이 있지 않나요? 가곡은 여창과 남창을 구별하는데요, 발성이나 표현 방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지요. 여성들이 부르기 시작한 건 조선 중기 이후부터예요. 옥타브를 높인 여창 가곡은 기교를 부리는 곡이 많아요.”

박민희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은 ‘경험하는 음악’이다. “저는 듣는 음악이 아니라 ‘경험하는 음악’을 지향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장소, 다르게 들려주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미술 쪽에서는 다원예술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음악 쪽에서는 저를 빼고는 다원예술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여러 페스티벌에서 저를 초대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는 지금 ‘공연과 전시의 결합’을 구상중이다. 무대감독과 함께 공간 배치와 퍼포먼스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박민희는 다원예술 시대에 가장 걸맞은 음악가 중 한 명이다.

‘전방위 예술’을 누비는 박민희가 가곡을 배우게 된 계기는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가곡을 듣고 단박에 반해 배우기 시작했고, 딸에게도 권했다. 아버지는 송년회 때 장기자랑을 하면 꼭 가곡을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실력은? “너무 못하세요.” 하지만 박민희가 국립국악고와 서울대 국악과로 진학해 가객의 길을 걷게 됐으니. 아버지는 가곡의 ‘귀명창’에다 딸의 앞날을 내다본 ‘눈명창’인 셈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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