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균 1주기 사진전에 나온 고인의 82년 작 ‘다방의 오후-경남김해’. 가깝지만 생경한 과거로 기억되는 80년대 한국의 사회상이 물씬하게 전해져온다.
다큐사진가 권태균 1주기 작품전
갈등과 개발·항쟁·전통 요동치던
80년대 인간풍경 담은 40여점 전시
첫 사진집 ‘노마드’ 펴내 오마주
갈등과 개발·항쟁·전통 요동치던
80년대 인간풍경 담은 40여점 전시
첫 사진집 ‘노마드’ 펴내 오마주
그가 흑백톤으로 찍은 80년대 한국인들은 시선과 함께 생동한다. 렌즈로 고정된 그 시절 장삼이사들이 우중충한 빛깔의 도시나 안개 낀 시골을 배경으로 움직이거나 서 있다. 눈길을 주면 금방이라도 눅진한 냄새가 확 끼쳐올 것 같다. 숨죽여 도란거리는 듯한 말소리, 숨결들도 귀에 울리는 듯하다. 82년 초겨울 김해 다방에서 한없이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리던 사내들이나 서울 대치동 재개발촌의 가파른 언덕을 숨가쁘게 달리던 교복 차림 중학생들의 사진 속 풍경을 어느새 우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서울 강남역 근처의 사진전문 전시장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는 다큐사진가 권태균(1955~2015)의 1주기 작품전은 가까운 과거지만 생경하기 짝이 없는 80년대 한국의 인간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잡지 <샘이 깊은 물>기자 시절부터 노마드(유목민)를 자처하며 80년대 초중반 이 땅 곳곳의 도시와 시골의 사람들을 찍었던 고인의 수작들을 간추린 출품작 40여점은 정치적 폭압과 항쟁, 개발과 전통과 뒤얽혀 요동쳤던 그 시절의 감수성을 그대로 떠서 전해주는 이미지 기록들이다.
사진 속에서 서울 용산역 부근의 옛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다급하거나 절박한 얼굴은 안동 논둑길 아침 안개 속에서 만난 농부의 스산한 눈빛이나 부산 오륙도 유람선에 널브러진 관광객들의 피곤한 모습과 뒤엉킨다. 충북 제천의 시골길에서 동네 아낙과 젊은이들이 나누는 명랑한 눈길은 의령 시골 눈길을 통학하는 중학생들의 풋풋한 걸음새와 겹쳐서 눈에 들어온다. 침울함과 역동성, 순수성, 조악함, 어색함 등이 다기하게 뒤얽힌 30여년 전 한국인들의 자화상이라 할 만하다. 도시화와 재개발이 본격화하던 즈음 시골 가옥과 공존하던 서울 강남의 재개발 과정과 인정이 넘실거리던 지방 소도시의 잊혀진 정경들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스승 강운구 작가에게서 체득했을 법한 자연스럽고 정갈한 구도에, 당대의 시대성을 인간의 몸짓과 표정에서 읽어내려는 투철한 의지와 교감이 더해져 권태균만의 생생한 인간 군상들을 만들어낸 셈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불편한 격동기였던 80년대 한국인들의 삶을 좀 더 편안한 시선으로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새해 눈빛출판사에서 고인의 주요작 100여점을 실어 펴낸 사진집 <노마드>(248쪽)의 출간을 맞아 꾸려졌다. 2010~13년 노마드 연작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었으나 생전 사진집은 펴내지 못했던 그에게 사후 선후배 지인들이 뜻을 모아 준비한 결실이다. 사진집에는 사진평론가인 정진국씨가 작품론을 썼고, 2010년 노마드 연작 첫 전시 당시 고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작가의 말’ 대신 실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스페이스22 제공
생전의 권태균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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