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 연극 ‘겨울이야기’
시칠리아 왕가 그린 ‘희비극’ 대표작
헝가리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가 맡아
시칠리아 왕가 그린 ‘희비극’ 대표작
헝가리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가 맡아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를 만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나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400년이 흘러, 현대적 해석과 연출이 돋보이는 무대다.
연극 <겨울이야기>(연출 로버트 알폴디)에서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손상규)는 왕비 ‘헤르미오네’(우정원)가 자신의 친구인 보헤미아의 왕과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오해한다. 질투에서 비롯된 감정일 터인데, 요즘말로 하면 심각한 의처증인 셈이다. 레온테스는 광기에 사로잡혀 갓난아이 딸을 황야에 내다버리고, 충격에 왕비와 왕자는 죽음에 이른다.
여기까지는 비극인데, 작품 후반부는 행복한 결말을 향한다. 왕비와 딸이 살아돌아오고, 화해에 이른다.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전성기에 <오셀로> 등 4대 비극을 내놓고 나서, 말년에 실험했던 희비극 장르의 대표작이다.
로버트 알폴디 연출은 여러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등장인물은 모두 짙은 색 양복 등을 입었고, 직사각형 격자로만 짜여진 무대 배경은 현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관객들에게 이런 일이 지금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장치라는 게 연출의 설명이다.
무대는 비극적 내용의 1막과 희극적 내용의 2막으로 뚜렷히 구분된다. 요즘 관객들의 취향에 맞게 원작을 압축한 형태인데 단순화의 위험은 피한 것으로 보인다. 16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시간’이라는 이름의 천사의 설명으로 가름하고, 뮤지컬 무대의 흥겨움으로 2막을 시작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연극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특별한 행동’은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알폴디 연출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헝가리 극립극장의 최연소 예술감독을 지냈다. 이번 국립극단의 ‘초청 연출’을 위해 두 달 동안 우리 배우들과 함께 뒹굴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갈등은 인간의 잘못에서 비롯된다. 갈등으로 세상 전체가 불타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10일부터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려진 연극은 24일까지 이어진다. 13살 이상 관람.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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