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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스트로니카 에피소드’ 참여한 DJ 뒷담화

등록 2005-10-19 17:16수정 2005-10-20 14:23

사진 왼쪽부터 지누, 디코드, 캐스커, 서영철씨.
사진 왼쪽부터 지누, 디코드, 캐스커, 서영철씨.
한·일 경계 허물고 일렉트로니카로 뭉쳤다

한·일 일렉트로니카 디제이들이 참여한 앨범 <이스트로니카 에피소드 1>이 한국에서 지난 14일 발매됐다. 한국쪽에선 디제이 진욱, 달파란 등이, 일본쪽에선 ‘레게 디스코 록커스’ ‘수나가-티 익스피어리언스’ 등의 작업이 실렸다. 1990년대 초반부터 ‘벽 잡고 머리 돌리는 춤’과 함께 클럽들을 중심으로 한국에 뿌리내린 일렉트로니카는 수많은 하위 장르를 곁가지 치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는 못하다. 이번 앨범 발매를 계기로 <이스트로니카…>의 일본 쪽 프로듀서를 맡은 재일동포 디제이 서영철(플라워레코드 대표), 한국 쪽 프로듀서인 ‘롤러코스터’의 디제이 지누, 미국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 디코드, 일렉트로니카 앨범 <스카이랩> 등을 발표한 캐스커가 지난 18일 한겨레 신문사에서 만났다. <이스트로니카…>에 참여한 캐스커는 일렉트로니카 앨범을 꾸준히 내놓으며 창작의 영역을 다져왔다. 디제이 디코드의 작품은 ‘에피소드 1’에 이어 12월께 한국에서 발매될 ‘에피소드 2’에 실릴 예정이다. 이들은 컴퓨터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 세계와 한·일 일렉트로니카 현황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영철 “한국 클럽, 10년전 일본 닮은꼴”

서영철 지난해 5월 처음 한국에 와봤어요. 디제이들도 만나고 클럽도 가봤죠. 거기서 1980~90년대 일본 클럽들이 자라날 때와 비슷한 생동감을 느꼈어요. 성장기를 지난 일본 클럽들은 지금 무척 세분화되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큰 흐름이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아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어요. 이런 참에 음반기획·제작사 ‘트라이앵글뮤직’이 현재 한국과 일본의 일렉트로니카를 모아 보자고 제안한 거죠. 재미 있겠다 싶었어요. 일본에서 듣던 다양한 음악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의 일렉트로니카를 일본에 알릴 수도 있고요. 일본에서는 한국 일렉트로니카 작품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지누 한·일 디제이들이 함께 작업한 것 외에도 한국 디제이들이 자신의 작업을 앨범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클럽에서 활동하는 디제이들이 그런 기회를 얻기 힘들거든요. 시작 단계여서 그렇겠지만 한국 일렉트로니카 음악계에는 아직 스타가 없어요. 큰 파티를 해도 주요 무대는 초빙해온 외국 디제이들이 맡고 한국 디제이들은 앞뒤로 공연하기 일쑤죠. 앨범도 낼 수 있고 그래야 디제이들이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고, 팬도 생길 텐데 말이에요.

캐스커 맞아요. 디제이도 예술가라는 등식이 외국에선 자리 잡았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못해요.

디코드 감동적인 노랫말, 현란한 연주가 있어야 좋은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을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렉트로니카에는 노랫말이나 화성이 없을 때도 있어요. 사운드 자체가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슴에 꽂히느냐를 봐야죠.

지누 “일렉트로니카 클럽 많아져야”


캐스커 ‘이스트로니카 에피소드 원’에 담긴 노래들만 들어봐도 전통적인 의미로 감동적인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요. 따라 부를 수 있는 팝으로도 손색이 없고 클럽에도 잘 어울려요. 일렉트로니카라는 바탕에 여러 요소가 충분히 융합돼 있죠. 어려운 일렉트로니카가 클럽에서 소비되는 것도 좋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정도의 앨범이 많이 나와야죠.

지누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90년대 서울 대학로에 헤비메탈 뮤직비디오를 하루 종일 보여주는 곳이 있었어요. 그때에 비해 대중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관심이 준 것 같아요. 클럽에 가는 사람들도 ‘오늘밤 하루 불살라 보겠다’는 경우가 많잖아요. 물론 그런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좀더 진지할 필요도 있죠. 또 영세한 클럽들이 유흥주점으로 등록하다가는 운영이 안되니까 일반음식점으로 내거는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클럽의 성격은 무시하고 너무 딱딱하게 규제하니까 자라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캐스커 “‘디제이는 예술가’ 인식없다”

서영철 클럽에서 춤도 추고 멋진 이성도 찾을 수 있지만 또 음악에 감동할 수도 있어요.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집에서 듣는 음악도 조금씩 달라져요. 일렉트로니카는 열려 있죠. 노랫말을 빼면 지역적 경계도 거의 느낄 수가 없어요. 재즈, 레게, 삼바 등은 정보 전달이 원활하지 않았을 때 지역에서 어느 정도 형식이 잡힌 뒤 세계로 나왔죠. 이와 달리 일렉트로니카는 젊어요. 인터넷 등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계속 진화하죠. 어디서 재미있는 게 생기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즐기고 새로운 걸 내놓는 식이잖아요.

지누 일렉트로니카는 사운드, 리듬이 중심이고 노랫말은 있더라도 단순화하죠. 한 가지 낱말로만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지역이나 성별 등을 떠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죠. 인도 가요를 영국 디제이가 리믹스한 적이 있는데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일렉트로니카의 틀은 넓죠. 디제이들이 창작도 하지만 리믹스를 많이 하잖아요. 올드팝, 디스코도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죠. 가수 샤데이의 노래들은 리믹스 버전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컴퓨터의 발전과 발맞춰 점점 더 많은 장르를 낳는 구실을 하죠.

서영철 리믹스 개념은 70년대부터 있었어요. 원곡을 3분짜리로 자르고 춤추기 알맞게 리듬을 보탰죠. 그러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새로운 느낌이 곡 속에 생겨요. 지금은 훨씬 복잡한 창조 작업이에요. 일본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디제이의 작업은 창조가 아니라든가 샘플링은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논란은 끝났어요. 이런 작업 방식을 인정하고 새로운 개념의 음악이 발전하는데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디코드 “사운드 자체를 봐달라”

디코드 디제이 작업이 창조냐 아니냐는 진부한 논쟁 같아요. 시각예술에서는 옛날에 다 끝난 거죠. 모든 예술이 재창조·재해석의 기류를 타고 있잖아요. 음악에서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죠. 일렉트로니카에는 재즈, 레게, 록 등 모든 음악의 재해석이 들어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흥미 진진하죠.

캐스터 예술로서 진정성은 창작자 본인이 알아요. 지금은 다른 장르에서 일렉트로니카의 작업방식을 도입하는 추세죠. 연주하지 않으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시절엔 록밴드에 디제이를 멤버로 두는 걸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서영철 이스트로니카 앨범을 발표한 것도 일렉트로니카를 하는 예술가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일렉트로니카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인 것도요. 그래서 ‘에피소드 1’에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걸로 골라 담았죠. ‘에피소드 2’에는 재즈 느낌이 더 들어갈 거예요. 두 앨범에 담은 한국 음악인들의 작품을 모아서 내년 초에 일본에서 앨범으로 낼 거고요.

지누 원래는 ‘에피소드 1’만 만들려고 했는데 참여하려는 한국 디제이들이 많았어요. 에피소드 5까지 만들고 내년에는 ‘이스트로니카’라는 음반기획·제작사를 둬 이런 음악들을 계속 알려나갈 계획이에요.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일본클럽 휠휠 나는 ‘조선’ 디제이

일본쪽 프로듀서 서영철은?

서영철(40)의 국적은 일본도 대한민국도 아닌 ‘조선’이다. 어느 곳으로부터도 국민으로서 제도적 보장을 받지 못하는, 붕 뜬 처지다. 아버지는 북한 출신 동화작가, 어머니는 민요 가수다. “학교 다닐 때는 재일 조선인으로 고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술 쪽 일을 하기 때문에 차별받는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외로움은 항상 있죠.” 왜 국적을 바꾸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피가 이 땅(한반도)과 이어진 걸 그럼 어쩌겠냐”고 답한다.

총련계 ‘민족학교’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연장선상에서 대학도 입학했지만 4개월 만에 중퇴했다. “몸 속에 흐르는 끼 때문”이라고 한다. ‘북방무도파’라는 댄스 그룹에 가입해 춤꾼으로 활동했는데 무릎을 다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땐 정말 땅을 치고 울었죠.”

부동산업을 하며 돈을 꽤 모았는데 재미가 너무 없었다. “10살 때부터 판을 사 모았어요. 중학교 때는 디스코클럽에 가는 걸 좋아했죠. 30살까지 디제이 해보고 자리잡지 못하면 그만 두기로 했죠.” 1989년부터 시작해 시부야 클럽계의 별로 떠올랐다. 잘 나가는 클럽 ‘오르간 바’, ‘엘로우’ 등에도 고정 출연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1995년 300만원으로 ‘플라워 레코드’를 차렸다. 클럽 디제이들의 일렉트로니카 작업들을 앨범으로 내놨지만 대중의 반응은 썰렁했다.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가 1997년 ‘77웨이스 오브 러브’라는 노래를 들고 나와 훨훨 날았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국 디제이들의 손을 빌어 유럽에 소개된 이 노래는 큰 인기를 누렸다. 이제 10년 무르익은 ‘플라워 레코드’는 인디레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 대중적인 음악은 아니지만 즐기는 사람은 충분히 있어 유지가 되죠.”

그는 지난해 처음 한국에 와봤다. 덕분에 그의 외로움은 한결 가벼워졌다고 한다. “입국 심사하는 분이 한국 사람이냐며 편하게 대해 주시잖아요.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여기가 고향 같았죠.”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왔다갔다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예전보다야 훨씬 쉬워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올 때마다 3~4주씩 기다려 임시비자를 받아야 한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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