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템페스트’ 칠레 초청공연
오태석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셰익스피어 원작의 <템페스트>가 한국의 굿 장단을 타고 칠레 관객의 가슴에 회오리쳤다.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형 폭풍’에 칠레 관객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백중놀이·만담·씻김굿으로 꾸며
현지언론 “동양과 서양 완벽 조합”
꽉 찬 관객들도 기립박수로 답해
오태석 “생략과 비약, 관객이 메워” 막이 오르자마자 관객들은 곧장 연극에 빠져들었다. 산발한 가락국 8대 질지왕이 미친 듯 북을 두드렸다. 광포한 바다에 일파만파 폭풍우가 몰아쳤다. 배에 탔던 신라 자비왕 일행은 혼비백산해, 5m도 넘는 장삼을 허공에 흩뿌렸다. 장삼 자락은 산발한 원귀처럼 집채만한 파도가 돼 객석을 덮쳤다. 마법을 익힌 질지왕이 마지막으로 다시 북을 내리쳤다. 마침내 배는 난파했다. 오태석의 <템페스트>는 이탈리아라는 원작의 배경을 신라와 가야가 다투고 있던 5세기 한반도 남해로 옮겼다. 복수를 꿈꾸는 프로스페로는 질지왕, 난파선에 실려온 알론소는 자비왕으로 바뀌었다. 마법의 힘을 익힌 질지왕은 폭풍우를 일으켜 자비왕 일행이 탄 배를 난파시키고 복수의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딸 아지(미란다)는 원수 자비왕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 현지 언론의 반응도 객석만큼이나 뜨거웠다. 현지 유력 일간신문 <메르쿠리오>는 리뷰 기사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완벽한 조합이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사용했지만 원작의 흐름과 결말을 잘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원작에 등장하는 도술, 액션 그리고 로맨스를 압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사실 오태석의 <템페스트>는 우리 전통문화의 ‘종합선물세트’이다. 백중놀이, 만담, 씻김굿 등은 전통연희의 ‘갈라쇼’라 불릴 만한데다, 대사도 우리 시조의 3·4조, 4·4조 운율을 활용하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이미 2011년 영국 에든버러 국제축제에서 ‘헤럴드 에인절스 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공연을 두번이나 봤다는 칠레의 배우 하이메 레제스(39)는 “연출이 좋았고 칠레 연극과 달리 가슴을 끓어오르게 했다. 우리 극단에서는 연출자의 사진을 벽에 걸어두는데, 이번 연극을 본 뒤엔 오태석 연출의 사진을 극단에 걸어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칠레 배우는 “서양 연극에서 사라져가는 리듬, 박자, 움직임들이 한국 연극에서 살아 숨 쉬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진짜 연극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오태석 연출은 “연극이 극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연극이 모든 걸 다 해주니까 관객은 즐길 부분을 뺏겼다. 관객한테 연극 보는 재미를 돌려주자고 생각했다. 무대 위의 연극이 4할이라면, 관객이 6할을 만든다. 이번 작품은 생략과 비약이 많은데, 관객은 자기의 상상력, 체험, 지식을 동원해 무대에서 생략된 부분, 비약하는 부분을 잇고 메우면서 즐기는 모습이었다”고 칠레 관객을 추어올렸다. 목화의 <템페스트>는 23일 마울레주 주도인 탈카에서 칠레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올린다. 산티아고(칠레)/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목화레퍼터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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